좁아서 터지기 직전인 집 냉장고에 늘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물건이 있다. 바로 식염수 팩을 할 때 필요한 식염수다. 식염수 팩이란 말 그대로 식염수와 화장솜으로 팩을 하는 것인데, 지금이야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식염수 팩을 이야기하면 “그게 뭐야?”라는 질문이 돌아오곤 했다.
약 3년 전 겨울, 내 피부는 폭탄을 맞은 상태였다. 입사 이후 오랜 시간 음주와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습관, 부족한 수면시간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주며 경계경보를 울렸다.
식염수 팩은 그때 살기 위해 시도했던 여러 방법들 중 비교적 효과를 본 방법이다. 방법은 각종 블로그에 상세히 소개돼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차갑게 식힌 식염수로 화장솜을 적셔 피부에 얹어두는 것이다.
차갑고 촉촉한 화장솜이 피부에 닿는 순간의 상쾌함이란…! 피부 온도를 즉각적으로 낮춰 자극받은 피부를 진정시키는 효과 하나만은 확실하다. 물 말고는 별다른 성분이 없으니 뭘 해도 난리가 나는 피부에 딱 적당하다. 화상 환자에게 드레싱을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피부에 닿는 것이다 보니 방부제 없는 식염수를 써야 하는데, 큰 용량으로 사면 위생상 식염수를 다 쓰기도 전에 버려야 한다. 나중에는 결국 20mL 용량이 밀폐 포장돼 하나씩 따서 쓸 수 있는 식염수를 사서 썼다. 좀 비싸더라도 이 편이 낫다. 두 번째, 화장솜을 아주 잘 골라야 한다. 약간이라도 거칠한 놈을 쓰면 오히려 피부에 자극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아예 화장솜을 화장지처럼 생긴 얇은 거즈형 유기농 화장솜으로 바꿨다.
마지막 단점은, 5분 이상 붙여두면 아무래도 물이다 보니 금방 화장솜이 마르는데 그럴 경우 식염수를 직접 얼굴에 들이부어야 한다. (10분 정도는 해야 진정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당연히 물이 흘러 옷이 젖으니 귀찮음은 기본이요 찝찝함은 옵션이다.
그놈의 ‘귀차니즘’ 때문에 피부가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온 뒤로는 자주 쓰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환절기마다 상비약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식염수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올해 가을도 마찬가지다. 피부를 망치는 스트레스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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