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6월 북한의 핵무기개발 의혹에서 비롯된 한반도위기가 절정에 올랐을 때 한국정부가 자칫하면 전쟁이 발발할 위험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미국의 대북 군사제재에 동의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한중인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조교수 리온 시갈은 27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그는 미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전문위원 출신으로 북핵 위기 당시에는 뉴욕 타임스지 편집위원으로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국이 94년6월 한반도에 병력증파를 검토했다는 것은 최근 한국에 왔던 윌리엄 페리 전미국방장관도 밝힌 바 있다. 미국은 그때 한국과 이같은 계획을 협의했었는가.
『한국은 미국의 모든 계획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병력증파 등 제재 외에 대화에 의한 해결방안이 없다는게 미국의 시각이었고 한국은 전쟁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재에 동의했었다』
―미국이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검토했었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는데….
『미국이 영변에 대해 이른바 「외과수술같은 공격(Surgical Strike)」을 면밀히 검토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한국 군부 일각에서도 이를 지지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은 실효성 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공격시 누출되는 방사능이 기류를 타고 일본으로 이동하게 되는 상황도 우려됐다』
―북한이 만일 공격을 받았다면 반격을 했을텐데….
『어쩌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엔 군사제재에 따른 전쟁발발의 위험성을 심각히 인식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 김일성(金日成)을 만나 핵개발포기를 설득했던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은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에서 미국정부가 당초 그의 방북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밝혔는데….
『미국 정부는 뒷전에 물러선 채 그의 보고를 받게 되는 상황과 그의 방북이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었다. 또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카터의 북한방문을 언짢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카터의 방북이 전쟁 위험이 따르는 제재보다 나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를 허용했다』
―결과적으로 볼때 경수로제공을 통한 북한의 핵개발동결은 바람직한 해법이었는가.
『물론이다. 일부에서는 경수로건설 비용이 많이 드는 점을 문제삼지만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면 이에 대처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북한이 현단계에서 핵무기를 다시 개발하려고 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지난 3년간 한국기업의 대북투자를 가로막은 것은 한국 정부이지 북한이 아니다.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를 원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다음 정권은 북한을 식량난에서 구하고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 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시갈 조교수는 북한의 핵 위기를 다룬 책 「이방인에 대한 무장해제―북한과의 핵외교」를 곧 출간할 예정이다.
〈한기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