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차례 낙선 끝에 5대 국회 때 첫 당선된 뒤 6,7,8,9,10,13,14,15대에 의원 생활을 했다. 8대 때는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들어왔고 11,12대 때는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했다.
정치 입문은 야당(민주당)으로 했지만 5·16쿠데타 후 여당(공화당)으로 옮겼다. 공화당 당의장(79년), 민정당 대표위원(88∼89년)에 이어 민자당 소속으로 국회의장을 연임할 때까지 변신을 거듭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93년 재산공개 파동으로 의장직에서 물러나 야인 생활에 들어갔다. 당시 그는 오랜 친구인 김영삼전대통령을 겨냥해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었다.
95년 민자당에서 쫓겨난 김종필(金鍾泌·JP)씨와 함께 자민련을 창당,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재기했다.
작년 대통령후보 단일화협상 과정에서 일찍부터 ‘김대중(金大中·DJ)대세론’을 주창, “JP보다 DJ와 더 가깝다”는 평을 들었다.
얼마 전까지 JP 옆자리인 국회 본회의장 좌석을 옮겨달라고 총무단에 요구할 정도로 JP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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