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대통령 당선자가 첫 총리 후보로 맨 처음 생각한 사람은 김준엽(金俊燁)전 고려대총장. 그러나 김전총장은 총리직을 고사했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사람은 이홍구(李洪九)씨였다. 김당선자는 인선실무팀에 “이홍구씨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던데…”라면서도 쉽게 결심을 하지는 못했다. 노태우(盧泰愚)정권에서 통일원장관을 지낸 6공인사였기 때문이다.
윤관대법관 이회창(李會昌)대법관 이한빈(李漢彬)전부총리도 총리 후보에 올랐지만 최종 결론은 황인성(黃寅性) 민자당 정책위의장.
당시 관계자의 증언. “총리 통일부총리 경제부총리 안기부장 청와대비서실장은 이른바 ‘빅(Big)5’입니다. 비서실장은 이미 부산 출신의 박관용(朴寬用),안기부장은 경북 선산 출신의 김덕(金悳), 통일부총리는 경북 금릉 출신의 한완상(韓完相), 경제부총리는 전북 장수 출신의 정재석(丁渽錫)씨로 내정돼 있었습니다.
인선 막바지였는데 정재석씨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바람에 경북 의성 출신의 이경식(李經植)씨가 경제부총리로 결정됐죠. 그러다보니 총리를 뺀 네 사람이 모두 영남 출신이었습니다. 전북 무주 출신 ‘호남 총리’로 급선회한 데는 그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연락 불발로 총리인선에까지 ‘연쇄반응’을 일으킨 정재석씨는 당시 강인섭(姜仁燮)의원과 김대통령의 사돈인 김웅세(金雄世)롯데호텔 사장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석씨는 후에 교통부장관을 거쳐 경제부총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