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교수는 가족의 반대와 교수직에 대한 애착 때문에 제의를 거절하기로 결심한 상태에서 YS와 6월12일 단독으로 만났다. 만나자마자 YS는 “박동지!”하며 덥석 손부터 잡고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경제를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박교수는 결심을 굽히고 말았다.
그후 집권 후의 경제정책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은 박특보는 후배인 강광하서울대교수를 간사로 해 한국경제의 44가지 과제별 전문가를 찾아 ‘45인회’를 구성했다. 작업은 92년 10월말까지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주로 이뤄졌다.
신경제 보고서의 직접 집필을 맡은 중간책임자들은 박특보의 서울대 상대 후배들. 강교수 노성태제일경제연구소장 김중수국민경제교육연구소장 전택수정신문화연구위원 노기성KDI연구위원 김세진금융연구원위원 등이 중심이 됐고 공무원 6명을 보강, 12인회가 됐다. 박특보를 비롯한 박종기인하대교수 김영욱생산기술연구원장 박영철금융연구원장 정영일농촌경제연구원장 유장희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등으로 구성된 6인회는 12인회가 쓴 보고서를 스크린했다.
결국 ‘박재윤사단’이 만든 「新경제」프로그램은 모두 77인의 작품이었던 셈이다.
<허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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