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문민정부 35/금융실명제]발표당일 잇단 해프닝

  • 입력 1998년 4월 5일 19시 26분


“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포합니다.”

금융실명제가 발표된 93년 8월12일 오후7시40분 청와대 춘추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금융실명제 특별담화문’을 읽어내려갔다.

김대통령이 10분쯤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을 때였다. 갑자기 이경재(李敬在)공보수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각하, 큰 일 났습니다.”

▼ 배석 국무위원들 『깜짝』

대통령이 전국에 생중계로 담화를 발표하던 중에 발생한 일인지라 배석한 국무위원들은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담화는 생중계되고 있지 않았다. 남산 송신탑의 고장으로 텔레비전 중계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

대통령을 모신 자리에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김대통령도 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잠시 후 송신탑 수리가 끝나 김대통령은 생중계로 담화문 발표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긴급명령의 효력에 하자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법령은 관보(官報)에 게재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지만 극비리에 만들어 다음날 즉시 발효시켜야 하는 실명제를 관보에 실을 방법은 없었다. 관보에 실으려면 적어도 이틀 전에 총무처에 원고를 넘겨야 했다.

그래서 ‘신문에 게재하고 방송에 발표하는 것으로 관보게재를 갈음한다’고 부칙을 달아두었던 것.

즉 대통령담화 후에 최창윤(崔昌潤)총무처장관이 긴급명령과 대통령령전문을 꼭 읽어야하는데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실명제가 워낙 극비리에 만들어졌고 18명만 알고 실무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가장 많은 일손이 필요한 발표날 이같은 실수가 생겼다.

이경식(李經植)부총리는 12일 오전9시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이 손질한 담화문 원고를 돌려받고 이어 오전10시반에는 ‘94년 예산안’을 보고하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실명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의전실은 두 일정을 모두 예산과 관련된 것으로 알고 오전9시로 합쳐버렸다.

아침 일찍 김석우(金錫友)의전수석비서관은 김대통령에게 오전9시 이부총리의 ‘보고’에 박관용(朴寬用)비서실장과 박재윤(朴在潤)경제수석비서관을 배석시키겠다고 일정을 보고했다.

담화문 작업에 몰두하던 김대통령은 예산안 보고 일정을 깜빡 잊고 “부총리만 만나겠다”고 말해 버렸다.

그 바람에 박수석은 예산안 보고회 참석대상에 자신이 빠진 것으로 오인,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담화문 원고를 받아쥔 이부총리가 “예산보고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김대통령은 “그것도 오늘인가. 그건 며칠 후에 해도 되지않아요”라고 되물었다. 이부총리는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라는 말로 물러섰다.

이어 이석채(李錫采)경제기획원예산실장을 돌려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동행했던 예산실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 김대통령이 예산보고를 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획원은 벌집 쑤신 듯 혼란에 빠졌다.

순식간에 ‘이부총리가 경기침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부총리가 휴가중이던 경제기획원 대변인을 오후5시반까지 사무실에 대기시키라고 지시하자 경질설은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 시중은행장에 「벼락 과외」

이날 실명제 실시를 가장 먼저 통보받은 사람은 백원구(白源九)재무부차관. 시나리오에 따르면 백차관에게는 이날 오후8시 시중은행장들을 모아 실명제 시행요령을 교육하고 관련 자료집을 나눠주는 역할이 맡겨져 있었다.

이 때문에 오후3시부터 재무부 임모과장이 차관실 문을 걸어 잠그고 ‘실명제 벼락과외’를 시켜야 했다.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에 이어 3당 총재에게는 김대통령이 직접 통보했다. 황인성(黃寅性)총리는 아랫사람들이 미리 알려주지 않은데 대해 두고두고 불쾌해했다고 주변사람들은 전했다.

실명제 발표 당일 벌어진 또 하나의 일화.

청와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로 돼있던 오후7시경 김대통령이 회의실로 내려오고있는데도 회의안건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부총리가 김대통령에게 달려갔다.

“각하, 옆방에서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왜 그래요?”

“의안이 아직 안왔습니다.”

김대통령의 안색이 변했고 이부총리는 실무를 총괄한 김용진(金容鎭)재무부 세제실장에게 “어떻게 됐소”하고 추궁하듯 물었다.

배짱 좋기로 유명한 김실장의 답변.

“아, 금방 올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그 사이에 무용담이나 들려드리십시오.”

황길수(黃吉秀)법제처장은 “각하를 모셔놓고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안절부절못했다.

오후7시12분경 폐쇄회로를 통해 청와대 정문이 열리고 재무부 백모사무관의 르망승용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이부총리 홍재형(洪在馨)재무부장관 김용진실장 등 3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안의 지각배달은 긴급국무회의 소집을 통보받은 총무처의정국이 몽땅 청와대로 출동하는 바람에 세종로청사에 의안번호를 부여할 직원이 남아있지 않아 빚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국무회의에 배석한 의정국장이 의안 일련번호를 기억하고 있어 안건자료에 급히 번호를 써나갔다. 그러나 배석자 자료에까지 번호를 쓸 시간이 없어 국무위원들의 자료에만 기록하고 회의는 시작됐다.

그런데 이부총리가 회의안건을 받아 살펴보니 긴급명령, 시행령, 국회동의안 등 3개 안건중 국회동의안이 빠져있었다.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봐도 모두 눈만 끔뻑거렸다. 비밀작업을 했던 과천 아지트에 놔두고 왔던 것.

대통령 앞이라 큰소리를 칠 수도 없는 상황. 급해진 이부총리는 김대통령에게 달려갔다.

“각하, 착오로 국회동의안 문건이 빠졌습니다. 각하께서 구두로 제안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부총리는 즉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혹시 백사무관이 승용차에 국회동의안을 흘리고 온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실명제의 주역인 이부총리는 역사적인 날에 열린 국무회의의 국민의례에 불참하고 말았다.

사건은 이어진다.

국무회의가 끝난 뒤 김용진실장은 대통령 시행령 번호를 부여할 법제처 직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보안문제 때문에 법제처에서 미리 번호를 받아 둘 수는 없었다. 국무회의장에 법제처 직원이 비상대기할 것으로 생각하고 번호를 기재할 자리를 비워뒀는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김대통령이 담화문을 낭독하는 사이에 김실장은 부리나케 기자실로 뛰어갔다.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설명 좀 해줘요.”

팔을 붙잡는 기자들을 뿌리친 김실장은 법제처 차장과 겨우 통화에 성공했고 번호를 받아낼 수 있었다.

김전실장의 회고.

“혹시 국회동의 과정에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시비가 벌어질까봐 크게 걱정했습니다. 남산 송신탑 고장으로 대통령이 담화문을 두번 읽는 바람에 약간 시간을 벌어 시행령 번호를 제 시간에 부여할 수 있었죠.”

이같은 실수들은 낱낱이 김대통령의 눈에 포착됐다. 주로 보안 때문에 생긴 일이었지만 단순한 실수도 없지 않았다. 이부총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각하.”

그렇지만 이날 김대통령은 매우 관대했다.

“무슨 소리요. 이렇게 고생하고서는…. 괜찮소.”

대사(大事)를 모두 끝낸 실명제팀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모든 내용은 준비한대로 진행됐는데 김대통령의 담화문은 처음 보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 김정남수석이 문안 작성

이전부총리의 설명.

“원래 준비된 담화문 초고는 양수길(楊秀吉)자문관이 쓴 것으로 실무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이뤄 경제질서를 바로잡고…’하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김대통령이 읽은 담화문은 실명제 도입 의의와 긴급명령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반국민은 별다른 불편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등이었습니다. 간결하고 힘이 들어간 명문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담화문은 누가 쓴 것일까.

청와대에서의 국무회의가 끝난 뒤 참석자와 배석자들이 악수를 하는 가운데 김정남(金正男)청와대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김용진세제실장과 마주쳤다. 무심결에 건넨 말.

“선배님, 담화문 어떻습디까?”

“오라, 당신이 썼구먼.”

따라서 김수석도 최소한 발표 며칠 전에는 실명제가 실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틀 뒤인 14일 박재윤수석이 김용진실장을 불러 저녁을 냈다. 비록 뒤늦게 알긴 했지만 어쨌거나 실명제 내용과 취지 및 경위 등에 대해 과외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외를 받던 박수석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말이오, 김실장. 나한테는 한마디 귀띔도 안해주고….”

“대통령이 통보 안한 겁니다. 사실 통보할 성격도 아니지요. 실명제 시행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야 박수석의 조언이 필요하지만 대통령이 일단 결심하고 나면 뒤치다꺼리야 실무자들이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실무는 저희들 몫인 만큼 박수석께서 소외된 것은 아닙니다.”

이 말에 다소 기분이 풀린 박수석은 김실장과 폭탄주를 연거푸 비웠다.

<허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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