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문민정부 36]실명제 주역들 어떻게 됐나?

  • 입력 1998년 4월 7일 20시 03분


금융실명제 주역들의 관운(官運)은 대체로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

이경식(李經植)부총리는 실명제 실시 후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을 주도했다. 그러나 93년 12월 쌀개방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95년 8월 한국은행 부산지점 지폐유출사고를 계기로 한은총재에 취임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결국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98년 3월 물러났다.

홍재형(洪在馨)재무부장관은 94년 10월 경제기획원장관을 거쳐 12월에는 통합 재정경제원을 맡아 95년 말까지 장수했다. 96년 4·11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맡아 일하고 있으며 지난해 대선 때 국민신당에 입당, 현재 최고위원으로 있다.

김용진(金容鎭)세제실장은 재무부차관을 거쳐 은행감독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감원장은 본인이 원한 자리가 아니어서 한때 잠적하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곧 중용할 것이다”라고 달랬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96년 말 과학기술처장관에 기용된 그는 한보사건이 터지면서 은감원장 시절 한보 부실대출에 대한 감독소홀이 문제가 돼 3개월만에 퇴임했다. 현재 조세연구원 자문위원.

양수길(楊秀吉)재정경제원 자문관은 교통개발연구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거쳐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로 내정됐다. 실명제의 고위급 주역 중 유일하게 현정부에서도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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