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치학과 진학에서부터 그랬다.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군복무까지 마친 그는 집요하게 서울대 정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몇 차례 실패 끝에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1지망인 정치학과가 아니라 지리학과였다. 1년 유급을 자청한 끝에 정치학과로 전과(轉科)하는데 성공한 그는 졸업하자마자 아남산업 공장장으로 ‘의외의 길’로 들어섰다.
그후 삼성전자 관리부장, 호텔신라 상무로 잘나가던 그는 90년 초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상도동캠프에 합류했다. 10년간 호텔신라 상무로 있는 동안 그는 ‘반(反) 이건희(李健熙)라인’으로 분류됐다.
당시 호텔신라의 오너였던 현 한솔그룹의 이인희(李仁熙)회장과 삼성 이건희회장의 반목 때문이었다.
김영삼후보의 의전특보를 거쳐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안기부 기조실장에 기용된 그는 안기부 예산과 인사를 총괄하는 직책을 십분 활용, 안기부를 장악했다. 그의 뒤에는 물론 현철씨가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기부가 현철씨의 사설정보기관이냐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둑을 좋아하는 현철씨가 일본에서 조치훈(趙治勳)과 대국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일에서부터 정치학과 스승이었던 이홍구(李洪九)전신한국당대표의 대선후보 행보를 돕는 일까지 그는 기조실장이라는 자리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현철씨를 업고 일어선 그는 현철씨 때문에 몰락했다. 김영삼정권이 끝난 지금 그는 다시 현철씨와 함께 PCS사업권 비리의혹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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