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장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무성(金武星)내무차관은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분이 지나도 짐은 나오지 않았다. 짐이 나온 것은 꼭 45분이 지나서였다.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공항을 빠져나온 김차관은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야 그 내막을 알게 됐다. 비서관에게서 전말을 전해들은 그는 기가 찼다.
내무차관의 짐 검색을 놓고 공항에 나와 있는 안기부 직원들과 경찰이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당시 내무부 관계자의 설명.
“김차관의 짐 검색 얘기는 금방 내무부에 퍼졌습니다. 안기부 직원들이 이것 저것 트집을 잡으며 짐을 통과시켜 주지 않더라는 겁니다. 명색이 내무차관의 짐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안기부 직원들이 자기들 상관(경찰청은 내무부 산하)의 짐을 뒤지는데 경찰이 그냥 두고봤겠습니까. 서로 한참 실랑이를 벌였던 모양입니다. 안기부 직원들이 물러서지 않자 경찰관들은 ‘좋다. 뒤져라. 하지만 나중에 너희 부장이 들어올 때 보자’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겁니다. 안기부 직원들이 그제서야 검색을 풀었다고 들었습니다.”
▼ 개혁빙자 인사전횡 소문 ▼
공항에서 안기부 직원과 경찰관들이 ‘충돌’한 배경에는 김기섭(金己燮)안기부기조실장과 김무성차관의 갈등이 깔려있었다.
그런가 하면 두 사람의 갈등의 이면에는 다시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의 ‘김기섭비호’가 있었다. 갈등의 시작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93년 초.
김대통령 취임과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자리잡은 김무성비서관을 어느날 안기부 해외파트의 간부로 있던 H씨가 방문했다. 당시 H씨는 보직 대기발령을 받은 상태. H씨는 김비서관을 만나자마자 안기부 개혁을 빙자한 김영삼정부, 정확히 말하자면 김기섭기조실장의 ‘인사전횡’을 고발했다.
“정치공작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국내파트는 건드리지 않고 국내정치와 무관한 해외파트만 팽(烹)시키고 있다. 그 바람에 영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들이 해외공작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김영삼정부 출범 이전부터 YS에게 줄을 대고 정보보고를 해오던 국내파트를 개혁할 수 없으니까 나라를 위해 해외공작에만 전념해온 해외전문가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요지였다는 후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실장에 대해 여러가지 얘기를 듣고 있던 김비서관은 H씨의 ‘제보’와 다른 곳에서 올라온 정보보고를 종합, ‘김기섭 리포트’를 만들었다.
김비서관은 문제의 ‘김기섭 리포트’를 현철씨에게 전달했다. 자칫 잘못하면 정권초기 권부내 권력암투로 비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김비서관은 리포트도 ‘육필(肉筆)’로 작성해 원본은 놔두고 사본을 전달했다.
김비서관과 현철씨를 잘 아는 30대 민주계 소장파의 설명.
“김비서관은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김소장(현철씨)한테 육필 리포트를 넘겼는데 현철씨가 그 리포트를 김실장한테 보여준 모양입니다. 김실장의 신경이 곤두섰던 모양입니다. 리포트 작성의 주범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현철씨가 김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그 리포트를 잃어버렸는데 급히 좀 갖다 줄 수 있습니까’라고 재촉하더라는 겁니다. 김비서관은 현철씨가 급하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원본을 갖다줬고, 아마 김소장은 그 원본을 김실장한테 넘겨준 모양입니다.
김실장은 측근들에게 필적감정을 시켰고, 어렵지 않게 김비서관이 작성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김비서관은 안기부의 도청과 미행을 받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김차관의 짐을 놓고 안기부 직원과 경찰이 벌인 ‘충돌’은 그러니까 정권출범 초기부터 시작된 김비서관에 대한 안기부 감시활동의 하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기부의 실세(實勢)인 김기섭기조실장의 ‘보복’이었고, 견제였던 셈이다.
사실 호텔신라 상무로 있다가 90년 3당 합당 직후 YS캠프에 합류한 김기섭씨는 특유의 처세술로 YS의 지근(至近)거리까지 가기는 했지만 상도동 가신들이나 민주계의 ‘보이지 않는 배척’을 당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배척’중에는 인간적인 냉대도 적지 않았다.
김기섭씨 자신도 YS를 둘러싸고 있는 상도동 가신들과 민주계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 그런 배척과 벽은 김기섭씨로 하여금 현철씨에게 매달리게 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현철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92년 대선 전후만 해도 최형우(崔炯佑) 김덕룡(金德龍) 홍인길(洪仁吉)씨 등 민주계 실세들은 현철씨에게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대선에서 승리한 뒤 민주계 인사들 사이에서 ‘현철이를 해외로 내보내야 한다’는 등 자신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현철씨는 ‘민주계 기득권층’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그런 현철씨에게 김기섭씨는 ‘편한 사람’이었다.
현철씨가 김무성씨까지 따돌리며 김기섭씨를 안기부 기조실장 자리에 앉히려고 한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던 것.
85년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야당총재의 아들 현철씨가 쌍용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바로 김무성씨였다. 그 후에도 김무성씨는 특히 현철씨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현철씨는 그런 김무성씨까지 제치며 김기섭씨를 안기부 기조실장에 앉히려 했고, 결국 앉혔다.
당시 사정을 지켜본 민주계 중진의 설명.
“대선이 끝난 뒤 원래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생각한 자리배치는 ‘안기부 기조실장 김무성, 청와대 민정비서관 김기섭’이었습니다. 그러나 발표 때는 두사람의 자리가 뒤바뀐 겁니다. 김대통령은 안기부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특히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돈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김무성씨가 적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박관용(朴寬用)비서실장내정자의 생각도 같았습니다. 김무성씨는 박실장내정자한테서 안기부 기조실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엔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압니다. 정치로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니 그럴만도 했죠. 박실장내정자가 미국 중앙정보국(CIA)국장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대통령의 사례까지 인용해가며 강권하자 김무성씨도 생각을 바꾸더라는 겁니다.”
당시 김영삼대통령직인수위에서 행정실장을 맡고 있던 김무성씨는 며칠 뒤 현철씨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남산으로 갈 것 같다”며 자신이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내정된 사실을 귀띔했다.
다시 민주계 중진의 설명.
“나중에 들었는데 현철씨는 김무성씨에게서 그 얘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던 모양입니다. 현철씨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YS를 찾아갔다고 들었습니다. 현철씨가 YS에게 ‘김무성 민정비서관,김기섭 안기부 기조실장’ 카드를 건의했지만 YS는 ‘안기부 기조실장은 김무성실장을 시키기로 했어’라며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하더라는 겁니다. YS의 머리 속에는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그 순간 현철씨가 꾀를 낸 겁니다. 현철씨는 YS에게 ‘아버님, 기조실장은 그 어느 누구보다 입이 무거워야 합니다. 그런데 김무성실장은 벌써부터 자기가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내정됐다는 얘기를 하고 다니는 모양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현철씨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은 YS의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분명했다. YS는 곧바로 박비서실장내정자를 찾았다.
“김무성이가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안기부 기조실장을 할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는데 박실장은 알고 있나.”
YS는 그렇게 역정을 내고 바로 전화를 끊었고, ‘김무성 안기부 기조실장’은 없던 일로 돼버렸다.
▼ 대선자금 불법 실명전환 ▼
현철씨가 ‘김기섭 안기부 기조실장’을 관철시키려 한 배경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직도 두꺼운 민주계 실세들의 벽, 공조직에서 생산되는 정보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 자신에 대한 김기섭씨의 ‘충성’ 등등.
특히 누구보다 김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정보의 흐름에 민감했던 현철씨에게는 안기부를 장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고, 이후 김기섭 기조실장은 현철씨의 손과 발로 나무랄데 없는 역할을 해냈다.
김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전격 발표한 직후인 93년10월에는 대선 때 쓰고 남은 대선자금 50억원을 안기부 공금계좌로 위장, 불법으로 실명전환토록 한 사실이 나중에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김현철―김기섭 라인’은 신한국당 경선에 대비, 이홍구(李洪九·현 주미대사)전총리를 대권후보로 상정한 ‘정권재창출 프로젝트’를 은밀하게 추진하기도 했다는 게 당시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견제가 없을 수 없었다.
94년 5월. 김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현철씨 부부, 그리고 현철씨의 장인 김웅세(金雄世)롯데월드사장 부부와 저녁식사를 하던 중 김기섭기조실장을 경질해야겠다는 얘기를 꺼냈다.
당시 현철씨의 거친 반발은 집권 민주계 내에서 은밀히 회자돼온 ‘김현철 스토리’중의 하나.
“김실장은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왜 그런 사람을 경질하려고 하십니까. 나와 김실장을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음해하는 겁니다.”
현철씨는 말을 마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는 것이 당시 회자되던 얘기의 골자였다. 현철씨의 ‘국정개입’은 이미 위험수위(水位)를 넘어서고 있었다.
〈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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