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씨 스스로도 97년4월 한보비리 청문회에서 “국회의원 출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아버님이 반대해 그 뜻에 따랐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당시 여권은 현철씨 출마문제로 한차례 진통을 겪었다.
95년 6·27 지방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신한국당 내에서는 현철씨의 ‘거제(巨濟) 출마설’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신한국당이 거제 지역구의원인 김봉조(金奉祚)의원에게 경남지사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철씨의 거제 출마설은 기정사실처럼 됐다. 김의원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먼 친척. 위기감을 느낀 김의원은 3월 하순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을 독대했다.
김의원〓저는 중앙정치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꼭 지방선거에 내보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김대통령〓다른 이유는 없다. (현철씨 출마)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그 이후 김의원을 경남지사에 출마시키려는 신한국당, 아니 현철씨의 계획은 일단 ‘없었던 일’이 됐다. 그러나 김의원은 이듬해 총선 때 지역구를 잃고 말았다. 분란을 일으킨데 대한 ‘괘씸죄’가 적용된 것.
그렇다고 현철씨의 총선 출마 계획이 ‘없었던 일’이 된 것은 아니었다.총선이 다가오자 ‘김현철 그룹’은 현철씨의 정치활동을 공개화하기로 하고 부산서구 출마를 구상했다.
서구에서 당선된 홍인길(洪仁吉)청와대총무수석비서관이 공천을 받기 직전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아들의 출마를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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