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3월24일 부임한 심부장은 검찰 안팎의 기대대로 김현철(金賢哲)씨를 구속함으로써 검찰의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그의 심기는 편치 않았다.
현철씨가 구속된 5월17일은 토요일이었다. 이보다 며칠 전 김종구(金鍾求·전법무부장관)서울고검장은 모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토요일밤에 심부장과 함께 저녁이나 하자”고 약속했다.
주말이니까 저녁이나 하자는 뜻이 아니었다. 그날이 바로 현철씨가 구속되는 날이었고 검찰측은 여론을 타진해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김고검장과 심부장, 언론사 간부 2명은 위스키 두병을 비웠다. 언론사 간부들은 “고생했다” “큰일했다”며 심부장을 위로했다.
그러나 심부장의 표정은 착잡했다. 그는 현철씨 구속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가 신경을 쓴 것은 92년 대선자금 수사여부였다.
당시 여론은 현철씨를 구속한 뒤 대선자금을 수사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여당측은 “수사해서 나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문제를 검찰에 떠넘기려는 분위기였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도 쉽게 파헤칠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이 여당측에 있었던 것.
검찰은 문제는 정치권에서 제기해놓고 검찰 입장만 난처하게 만들려는 여당측 태도에 반발하고 있었다.
이날 심부장이 한 다음 한마디에는 당시 정치권에서 무책임하게 주고 받은 대선자금 파문에 대한 검찰의 도전의지가 배어 있었다.
“대선자금도 까라면 까겠어. 그까짓 것 못할 것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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