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율곡사업(한국군 전력증강사업)에 대한 특별감사결과 무기 관련업체에서 수천만∼수억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고발된 4성 장군 출신 4명이 한꺼번에 출두했다. 이종구(李鍾九) 이상훈(李相薰)전국방장관 한주석(韓周奭)전공군참모총장 김철우(金鐵宇)전해군참모총장이 그들.
조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감사원이 계좌추적을 통해 돈이 오고간 내용을 모두 파악해 검찰에 넘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대검청사 15층 특별조사실에 들어선 4명의 피의자중 한사람은 대뜸 검찰 고위층의 이름을 대며 전화를 연결해달라고 했다.
“검사님, 나 하고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할말이 있으면 밖에서 다 하고 오시지 왜 여기와서 전화를 하려고 합니까?” 수사검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면 씨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주 잘아는 사이인데….”
“검사장님은 지금 수사 때문에 바쁘십니다.”
다른 조사실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내가 법조계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 아십니까? 지금 짓고 있는 서초동 대검청사와 대법원청사는 원래 그 옆의 정보사 부대 때문에 고도제한에 묶여 건축허가가 나올 수 없었는데 내가 나서서 청사 옥상에 진지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내 준 겁니다. 그때 법조계에서 나한테 부탁 많이 했어요.”
당시 수사 관계자의 회고.
“검찰과 법조계의 업보였습니다. 당시 소환된 사람들이 누굽니까. 5,6공 시절 권력 그 자체 아니었습니까. 일부이긴 하지만 검찰 간부들이 그 사람들과 술 자리 한번 갖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그러니 조사받으러 와서도 검찰을 우습게 안 것 아니겠습니까.”
피의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한 수사 관계자의 기억.
“직무 관련성을 계속 부인하기에 ‘직무와 관련없이 어떻게 군수업체에서 몇억원씩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전(全)장병에게 계란 한알씩 먹이려고 해도 그 정도의 돈은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거예요. 끝까지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수사는 하루만에 끝나고 4명 모두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종구전장관의 혐의는 군초소 등 건설과 관련해 J건설 등에서 1억8천만원을 받았다는 것. 이상훈전장관은 현대정공에서 3천만원을 받은 것 외에 김우중(金宇中)대우그룹 회장이 대구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호용(鄭鎬溶)전의원에게 전해주라며 준 1억2천만원을 중간에서 가로챈 혐의가 추가됐다. 김전총장은 무기중개업체인 H실업에서 3억원을 받았고 한전총장은 대한항공 등에서 1억6천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4월말부터 70여일 동안 계속된 감사원의 율곡사업 특감과 그 이후 7일간 이어진 검찰 수사는 이렇게 사실상 종결됐다.
그러나 정작 율곡사업의 핵심의혹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무기구입처 선정과 전투기 기종(機種) 부당변경과정의 로비의혹과 거액 커미션 수수의혹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국방부 및 군 고위 관계자와 무기업체 사이의 단순 금품수수사실’만 드러났다는 것이 수사 결론이었다.
이 결론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의 회고.
“율곡사업의 구조적 비리는 무기 도입과 기종변경 과정에서 정치권과 군의 실력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리베이트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파헤치려면 무기 제조업체와 중개상의 비자금을 캐고 자금흐름을 추적해야 합니다. 그런데 감사원 감사자료를 보니까 그게 거꾸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전(前)정권의 몇몇 군 실세들의 개인 및 가족계좌를 찾아 역추적을 한거죠. 그런 방식으로는 구조적 비리를 캘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군의 실력자들이 리베이트를 받았다면 그렇게 쉽게 자신과 가족의 계좌에 넣었겠습니까. 개인계좌에 들어간 돈은 그들 스스로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돈일 가능성이 많은 거예요. 오죽하면 수사검사들이 ‘뇌물인지 불분명하다’며 수뇌부에 불구속 수사를 건의했겠습니까.”
당시 감사원 관계자는 이같은 지적을 반박했다.
“전직 장관과 장성들에 대한 계좌추적은 율곡사업 특감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감사원은 특감에서 무기체계 및 기종결정 등 여러 분야에서 1백건이 넘는 문제점을 찾아내 시정 주의통보 문책요구 등을 했습니다. 업체의 부당이익 수백억원도 회수하도록 하고 불합리한 제도 수십건도 개선하도록 했습니다. 계좌추적은 이와는 별도로 직무감사팀에 의해 부수적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군 관계자들은 감사원의 특감 결과에 대해 불만이었다. 지적사항이 대부분 비전문적이었고 행정절차상의 사소한 잘못 등으로 율곡사업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통보한 사례가 많았던 탓이었다. 관련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국방부는 징계통보대상이었던 김성섭(金成燮)국방부획득개발국장 등에 대한 징계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김전국장의 설명.
“율곡사업 종사자 대부분은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이 때문에 특감에서 비리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발견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자 감사원은 사업 자체에 대한 감사보다 계좌추적에 들어간 것이죠. 감사도 무기체계 전문가가 없다 보니 단순히 비슷한 장비를 비교해 왜 값이 더 싼 장비를 도입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게 고작이었어요. 무기라는 것은 비용 대 효과, 아군 및 미군 장비와의 호환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데 단순히 예산만 따진 겁니다. 그래서 국방부에 감사결과가 통보된 뒤 저희들이 소명자료를 만들어 반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권영해(權寧海)국방장관이 개혁 분위기에 역행한다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면 율곡사업 특감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취임 이틀 뒤인 93년 2월27일 서울 서소문 옛 대법원 청사내 이회창(李會昌)대법관 집무실에 감사원 사무총장과 국장급 간부들이 찾아갔다. 전날 감사원장 내정자로 발표된 이대법관을 인사차 방문한 것.
다음날 이대법관은 감사원 실무직원들을 집무실로 불렀다.
“감사원법을 연구해보니 법에는 무엇이든지 다 감사할 수 있도록 돼있는데 감사에 성역이라 할만한 것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율곡사업이란 것이 있는데 군의 입김 때문에 한번도 감사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장 내정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율곡사업은 고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이 자주국방을 위해 74년에 시작한 한국군 무기 및 장비 현대화 사업. 해마다 국방예산의 30∼40%를 차지해왔으며 93년 당시에도 국방예산의 31.6%에 해당하는 2조9천1백61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율곡사업의 내용은 모두 군사보안이라는 베일에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3월초 이대법관은 감사원장으로 정식 부임하면서 율곡사업 특별감사를 지시했다. 율곡사업에 대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율곡사업 특감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어땠을까.
당시 감사원 고위 관계자의 설명.
“청와대는 율곡사업 특감계획에 대해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공식 보고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감사원장이 정례적으로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회동을 했었는데 그때 비공식적으로 알려주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제대로 몰랐기 때문인지 청와대의 간섭은 별로 없었습니다.”
율곡사업 특감의 또 다른 문제점은 차세대전투기사업(KFP)에 대한 감사결과가 유보된 점. KFP사업은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 직접 기종변경을 지시했고 율곡사업의 주요 23개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커 의혹이 집중됐던 분야였다. 감사원은 노전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1차 발표에서 유보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노전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가 비밀리에 이뤄졌다. 감사원 고위간부가 20여 항목의 질문이 담긴 서면질의서를 노전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며칠 뒤 서면답변이 왔다.
질문서와 답변서 내용에 대한 당시 감사원 관계자의 기억.
“질문서는 ‘F18을 F16으로 변경한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 과정도 납득할 수 없으니 해명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노전대통령은 ‘감사원이 전직대통령을 감사하는 것은 헌정사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답변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참고가 되도록 한다는 뜻에서 답변합니다. 기종변경은 본인의 소신에 따라 내린 정책판단이었습니다’고 답변했습니다.”
20년 가량 성역으로 닫혀있었던 ‘율곡의 문(門)’은 이렇게 열리는 듯 했다가 다시 닫히고 말았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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