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문민정부 (72)]메아리없는 문민 對北제의

  • 입력 1998년 8월 24일 19시 22분


문민정부 5년 동안의 남북대화 제의는 각종 아이디어를 총망라하다시피 했다.

김영삼(金泳三)정부의 첫 대북제의는 김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김일성 북한주석과의 조건없는 정상회담이었다. 이 제의는 북한이 93년 3월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을 해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핵문제로 인해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던 93년 5월20일 황인성(黃寅性)국무총리는 핵문제 해결을 위한 고위급회담 대표접촉을 제안했으나 역시 북한의 호응이 없었다. 황총리는 6월7일에는 특사교환을 다시 제의했다.

정부는 5월부터 북한과 미국간의 직접대화가 시작되자 남북대화를 북―미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어 한완상(韓完相)통일부총리는 93년 9월 제삼국을 통한 이산가족 서신거래와 상봉을 추진하자고 촉구했지만 역시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한부총리는 같은 해 10월26일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설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자는 제의도 했다.

94년에 들어서는 김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선(先) 핵문제 해결, 후(後)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6월18일 방북했던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주선으로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 예비접촉까지 이뤄졌지만 김주석의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북한지역 콜레라 공동방역조치 제의(94년 10월 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 △민속예술경연대회 남북공동개최 제의(94년 10월 이민섭 문체부장관) △8·15 공동경축행사 협의를 위한 차관급회담 제의(95년 1월 통일원차관 성명) △부산 동아시아대회 북한 참가 촉구(97년 3월 국회 결의안) 등이 이어졌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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