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남북문제의 주도권을 포기한 사실이 없다. 당시 정부에서 생각한 ‘2+2회담’은 처음에 ‘2자’가 만나 회의를 하고 나머지 ‘2자’가 나중에 참여하여 회담을 종료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4자’가 모여 회의를 하되 회담내용에 있어 남북한 양자간의 합의를 도출하고 미·중이 이를 촉진, 보장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95년 8월이나 96년 4월 제주 정상회의 사이에 아무 변화가 없으나, 단지 ‘2+2’의 표현을 쓰지 않고 ‘4자회담’의 표현을 썼을 뿐이다. ‘2+2’건 ‘4자’건 남북한이나 미·중의 역할이 달라진 바 없다.
2)4자회담을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 시기에 맞춰 한미정상이 공동 제의한 것은 북한의 4자회담 수락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15대 총선 등을 고려해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을 성사시키거나 4자회담을 제안한 것은 아니다.
3)4자회담에 관한 제의를 미국과 협의하는 자체가 ‘안보조정회의’결정사항으로 미국과의 협의진행상황은 처음부터 통일부총리, 외무장관 및 국방장관과 협의하였고 중간에도 변동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협의하였으며 다만 차관들에게는 보안을 지켜주도록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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