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cheating(이건 사기입니다)!”
재정경제원 최중경(崔重卿)금융협력과장이 휴버트 나이스 IMF단장에게 항의하는 고함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말도 안됩니다. 지금까지 협상은 무효입니다.”
나이스단장이 뒤늦게 내민 부속 합의서 때문이었다.
표지 한 귀퉁이에 ‘대외비’라는 붉은 글씨가 찍혀 있는 이 문건에는 ‘서울 제일은행 등 2개 시중은행과 12개 종합금융사 폐쇄’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 당시 정부가 염두에 둔 폐쇄대상 금융기관은 청솔종금 단 한곳뿐이었다.
거시 산업 노동 대외거래 금융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합의를 이루고 양해각서까지 교환하고나서야 슬그머니 내놓은 이 부속합의서에서 숨겨둔 복병이 나타나자 협상장이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보고를 받은 임창열(林昌烈)재경원장관 겸 부총리는 즉시 쉬고 있던 재경원 금융정책실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긴급호출했다.
양측 협상팀이 다시 추가협상에 매달린 결과 9개 종금사를 ‘실사 뒤에 처리한다’는 타협안을 도출해냈다.
몇 시간 후인 11월30일 오전 데이비드 립튼 미국 재무차관이 잠바 차림으로 김포공항에 비밀리에 도착했다.
일단 서울 하얏트호텔에 여장을 푼 그는 밤 늦게 IMF와의 협상장이 마련된 힐튼호텔 10층으로 숙소를 옮겼다.
이날 저녁 나이스단장은 협상 도중 부지런히 10층과 19층을 오르내렸다. 그러더니 종금사를 실사한 뒤 폐쇄하기로 한 IMF와 정부의 합의는 24시간도 채 안돼 ‘즉각 폐쇄’로 바뀌어 버렸다.
임전부총리는 최근 이렇게 회고했다.
“나이스단장이 10층에만 갔다오면 말을 바꾸는 겁니다. 그날 밤 호텔 로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미 재무부 사람(립튼 차관을 지칭)과 마주쳤지요. 대뜸 ‘당신들의 진의가 뭔지 우리와 직접 이야기하자’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 굉장히 겸연쩍어 하더군요.”
이에 앞서 11월28일 오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미국 워싱턴의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추수감사절 휴가를 즐기던 클린턴대통령은 경제 자문관들과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토론을 끝낸 직후였다.
통화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클린턴의 전화통화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2월 첫째 주면 한국은 파산이다.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짓는 게 좋다.”
한달 전 미국이 한국에 수출한 네브래스카산 쇠고기에서 O―157균이 발견됐을 때 클린턴대통령이 “제발 원만하게 처리해달라”며 사정사정하던 전화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양국 정상이 통화한 뒤 윤진식(尹鎭植)청와대 금융조세비서관이 대통령의 긴급전갈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정부과천청사내 재경원 차관실로 달려갔다.
이 때까지 밀고 당기는 식으로 진행되던 협상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한국 대표단은 저자세로 돌아섰고 IMF는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다. 클린턴대통령의 주문이 얼마나 위압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경식(姜慶植)부총리가 경질되면서 IMF와 합의했던 ‘IMF행 발표’가 무산된 바로 다음 날인 11월20일.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의 성명이 오전에 나왔다.
“한국이 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융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행동을 신속히 취해야 한다.”
제발 꾸물거리지 말라는 재촉이었다. 미 재무부는 전날 한국에 날아온 티모시 가이스너 재무부차관보에게 긴급 훈령을 내렸다.
‘임부총리를 만나 IMF행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시켜라.’
가이스너차관보가 임부총리를 만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임부총리는 “의전상 격이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미 재무부는 여러명의 차관보를 두고 있어 우리 재경원으로 치면 그는 국장급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임부총리의 거절 소식에 주한 미대사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이스너차관보는 루빈재무장관이 보낸 특사이니 그를 만나야 합니다.”
결국 임부총리는 서둘러 가이스너차관보를 만났다.
같은 날 오후 가이스너차관보와 테드 트루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미국의 중앙은행)국제금융국장, 스탠리 피셔 IMF부총재 일행이 한국은행에 들이닥쳤다.
이경식(李經植)한은 총재를 만나 ‘IMF행이 불가피하다’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미 재무부 FRB IMF 등 세계 금융시장의 권부(權府)를 대표하는 이들은 협상의 주요 대목마다 협공작전을 폈다.
미국의 파상적인 영향력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정부가 IMF행을 어떻게라도 막아보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렸던 일본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임부총리가 11월28일 오후6시 일본 도쿄(東京)의 미쓰즈카 히로시(三塚博)대장상 집무실에 들어섰다.
“한국이 무너지면 일본도 흔들립니다. 일본이 (한국을) 도와줘야 합니다.”
임부총리의 말에는 협박과 호소가 뒤섞여 있었다. 임부총리는 일본계 은행들이 97년 들어 무려 1백50억달러를 회수해갔다는 자료도 내보였다.
그러나 미쓰즈카 대장상의 답변은 짧고도 명확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때 미쓰즈카 대장상이 11월 초 루빈 미 재무장관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내보였다고 알려져 있다(이에 대한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미쓰즈카는 루빈이 편지를 보냈는지 여부조차 확인해 주기를 거부했다).
이날 임부총리가 대장성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은 루빈 편지의 내용을 짐작케 한다.
“양국은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입니다. (일본은) IMF의 틀 내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IMF로 가지 않으면 한 푼도 지원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을 일본도 앵무새처럼 반복한 셈이다.
이미 11월28일 클린턴대통령은 김영삼대통령에게 전화하기 직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입장을 전달해둔 터였다.
루빈 미 재무장관은 입각 전 세계 최대 증권사인 골드만삭스의 회장 자격으로 재경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재경원 장관이나 차관을 만나기로 하고 정부과천청사에 들렀으나 그가 만난 사람은 증권과장뿐이었다.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어 재경원 청사의 비상계단을 4층에서 7층까지 헤매고 다녀야 했다.
골드만삭스의 회장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런 푸대접을 받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호사가들은 “이것이 후일 미 재무부가 한국에 ‘거친 태도’를 보인 한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입방아를 찧고 있다.
까탈스럽기 그지 없던 미 재무부는 한달도 못돼 한국 외채의 만기연장과 관련, 국무부와 국방부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말았다.
97년 12월1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가 열렸다. 당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와 월스트리트저널지가 보도한 이날 회의상황을 종합하면 이렇다.
“클린턴 대통령,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등이 둘러앉았다. 의제는 한국이 진 외채의 만기연장 문제.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루빈장관은 ‘시장논리’를 설파했다. 한국에 대한 채권 만기연장 문제는 오로지 민간금융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만기연장 때 금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커져 한국에는 불리했다.
이때 코언국방장관이 단호히 말했다.
‘(한국 외환위기는) 수만명의 미군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총을 겨누고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올브라이트국무장관이 코언장관을 거들었다.
회의 결과는 한국에 대한 자금 지원을 조기에 재개하고 은행들의 외채 연장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것.
경제문제가 안보논리로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 회의가 있은 뒤 미국 은행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미국 정부가 (미국)은행들의 팔목을 비틀었던 것이다.”
이 신문의 보도대로 이날 국가안보회의 이후 한국의 외채 만기연장 협상은 비교적 쉽게 타결됐다.
미국 재무부의 논리든, 국방부나 국무부의 논리든 적어도 한국 외환위기의 ‘수습과정’에서는 미국이 모든 상황을 좌지우지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한국의 환란 자체가 미국의 아시아 길들이기 전략의 일환’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견해의 진실여부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용재기자〉y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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