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문민정부 90]안개속 「金心」논란

  • 입력 1998년 12월 10일 19시 42분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보름 정도 남겨두고 있던 97년 7월5일 밤.

신한국당 당내 경선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던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23층 멤버십클럽에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 지도부 인사 12명이 극비리에 모였다.

‘반(反)이회창(李會昌)연대’를 모색해온 정발협 지도부는 대세론을 업고 선두를 달리는 이후보를 따라잡기 위한 승부수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정발협 내부는 ‘영남후보론’을 내세운 이수성(李壽成)후보 지지파와 지지도가 급부상중이던 이인제(李仁濟)후보 지지파로 갈려 좀처럼 의견통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7월5일은 경기 수원 문화예술회관에서 당내 경선후보 7명이 첫 합동토론회를 가진 날이었다. 그래서 정발협 핵심인사들은 각 후보에 대한 비교평가도 할겸 최종결단을 내리기 위한 D데이로 결정한 것.

이들은 3일 새벽 ‘14인 극비회동’이 노출돼 이인제후보 지지로 돌아서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고 이에 이수성후보 지지파들이 반발해 내분이 일자 후보결정 모임을 취소한다고 일단 연막을 쳤다.

그래 놓고 핵심 인사들은 은밀히 모임을 재추진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로 모임 장소를 정해놓고 하루 전에 통보까지 했다.

그러나 보안을 위해 모임 몇 시간 전에 장소를 라마다 르네상스호텔로 바꾸었다.

5일 밤 정발협의 비밀모임은 서석재(徐錫宰)공동의장이 사회를 봤고 이재오(李在五)기획단장이 각 후보의 합동토론회 연설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보고했다.

“이인제후보의 경우 박수는 많이 받았으나 청중의 가슴을 찡하게 울려주지 못했다. 이수성후보는 역시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줬다. 차기 정부가 해결해 나가야 할 국가적 난제들을 살펴볼 때 도덕적이고 유연한 리더십을 갖춘 적임자다.”

이수성후보 지지파인 이의원은 다른 후보의 연설내용은 평가절하하면서 처음부터 이수성후보 지지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이어 서청원(徐淸源)간사장과 권정달(權正達)운영위원장 유용태(劉容泰) 박종우(朴宗雨) 허대범(許大梵)의원 등이 차례로 ‘지역구도를 바탕으로 한 본선필승론’을 제기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역대 선거 못지 않은 지역대결 구도가 불가피하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영남권 출신의 이수성후보뿐이다.”

대구 출신의 유성환(兪成煥)전의원이 반격에 나섰다.

“무슨 소리냐. 이번에 또 지역주의를 이용하면 정말로 역사에 죄인이 된다.”

전남 곡성 출신의 심상준(沈相俊)위원장도 “호남지역은 이번에도 포기하자는 거냐”며 반발했다.

이인제후보 지지자인 김운환의원도 나서 “전국적인 지지도가 있고 명분있는 사람이 있는데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는 사람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 하느냐”며 이수성후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모임의 연락을 맡은 이재오기획단장이 정발협내 이인제후보 지지파의 핵심인사인 김의원을 따돌리기 위해 일부러 연락해주지 않았는데 김의원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임에 나타났다.

김의원은 서공동의장으로부터 뒤늦게 “오늘 중요한 모임이 있다”는 귀띔을 받고 모임에 참석했다.

난상토론은 4시간이 넘게 계속되면서 열기를 더해갔다. 벌써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6명은 이수성후보 지지를, 3명은 이인제후보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3명은 관망하는 쪽이었다.

서공동의장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 행동통일을 합시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행동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서공동의장은 백지를 꺼내 연대서명을 제안했고 참석자들은 박수로 동의했다. 12명 전원이 차례로 서명한 뒤 누군가가 “그냥 서명만 해놓으니 영 이상하다. 나중에 타이핑을 해야 하는데 제목을 달아야 하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서공동의장이 ‘이수성후보 지지모임’이라고 가필해 넣었다.

정발협의 좌초로 이어진 이른바 ‘12인 심야비밀회동’의 연판장 파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특히 이날 정발협 지도부의 이수성후보 지지 결정은 서청원간사장이 전날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독대한 뒤 이뤄진 것이어서 파문은 더욱 컸다.

그동안 안개 속에 묻혀 있던 ‘김심(金心·김대통령의 의중)’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반면 이회창후보를 비롯한 타후보 진영에서는 “정발협의 이수성후보 지지파가 김심을 팔아 공정경선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그렇다면 7월4일 김대통령과 서간사장간의 독대에서는 과연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7월1일 김대통령은 이회창후보의 당 대표직 사퇴 수리와 동시에 정발협에 사실상의 해체지시를 내렸다. 정발협은 김심을 탐색하기 위해 청와대에 면담을 신청해 놓았다.

7월4일 오후 서간사장에게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정발협은 각하의 통치를 뒷받침한다는 차원에서 일해왔습니다.”

서간사장이 먼저 대통령후보 경선을 둘러싼 당내 움직임과 정발협의 활동 내용을 간단히 보고했다.

“당이 왜 이렇게 시끄럽나. 이회창대표의 사퇴요구도 받아들였고 하니 정발협도 이제 친목단체로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어.”

김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은 밝히지 않은 채 당의 안정만 거듭 강조했다.

“12월 본선에서는 다른 어느 후보보다 이수성전총리가 유리합니다. 저는 이전총리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면담이 끝나갈 무렵 서간사장이 김대통령의 언질을 받아내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정발협 내부 문제를 왜 나한테 와서 묻나.”

김대통령은 아무 표정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은 면담을 마친 서간사장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순간 김대통령이 “한꺼번에 움직이지는 마래이”라고 알듯 모를 듯한 한마디를 던졌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이수성후보를 밀되 김심이 표나지 않도록 은밀하게 움직이라’는 언질을 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집단행동으로 인해 오해가 생기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말이었다.

결국 김대통령으로부터 정발협의 후보 지지 문제에 대해 아무런 확답을 듣지 못한 서간사장은 서석재공동의장 이재오기획단장 등을 만나 청와대 면담결과를 놓고 상의했다.

김대통령의 마지막 한마디가 마치 ‘목에 걸린 생선가시’같았다. 그러나 대체적인 결론은 ‘김심은 무심(無心)’이라는 쪽으로 모아졌다.

이기획단장이 “대통령 말씀은 이제는 우리보고 알아서 하라는 뜻이니 이수성후보 지지 쪽으로 밀어붙이자”고 해석했고 서간사장 역시 동의했다.

이에 앞서 서간사장이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청와대를 빠져나올 즈음 김대통령은 김광일(金光一)정치특보를 호출했다.

김대통령으로부터 서간사장과의 면담내용을 전해들은 김특보는 서공동의장과 서간사장이 의논하고 있는 자리에 찾아와 다시 한번 김대통령의 ‘경선 엄정중립’의지를 전했다.

혹시 김대통령과의 독대결과를 왜곡해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데 활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깔린 조치였다.

5일 밤 이수성후보 지지로 의견을 모은 정발협 지도부는 일요일인 6일 오전 이를 전격 발표하고 이수성후보 경선대책본부까지 발족시키려 했다. 하지만 경선본부의 인선작업이 계속 지연됐다.

그런 상황에서 이날 오후 이인제후보 지지파인 김운환의원이 “행동통일을 위한 백지서명이었지 결코 특정후보 지지서명이 아니었다”며 연판장 조작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반 이회창 5인 후보가 결선투표에 오른 한 후보를 밀어준다는 연대서명이 성사되면 이수성후보를 지지할 용의가 있다는 방향으로 정리가 됐을 뿐 이후보를 지지하기로 결론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연판장 조작’주장이 불거진 데 이어 7일 아침에는 김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얘기를 쓸데없이 하고 다닌다”며 격노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정발협 지도부는 이수성후보 지지 선언을 포기해야 했다.

서간사장은 7일 아침 “김심은 없다”고 해명한 뒤 간사장직을 사퇴했다. 이수성후보와 이인제후보 지지파는 뿔뿔이 흩어졌다.

범민주계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마지막 시도였던 정발협의 역할은 이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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