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자 지난 4년간의 ‘원외(院外)’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96년 15대 총선 낙선, 98년 구속 수감(경성그룹으로부터 4000만원 수뢰혐의)과 어머니 별세, 올해 들어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 대상에 오르는 등 그간의 갖가지 힘들었던 기억과 함께 새삼 낙담 설움 분노가 가슴을 메웠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했던가. 17일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만난 정당선자에게서 과거의 ‘부잣집 외동아들’ 모습은 엿보기 어려웠다. 인터뷰 내내 그는 “지옥에 떨어졌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기분이다” “정말 반성 많이 했고 주민들께 감사할 뿐이다”며 연신 몸을 낮췄다.
당권이나 대권도전 의사를 묻는 질문에도 그는 “지금은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며 입을 닫았다. “자꾸 그런 말을 하면 대통령의 힘을 뺄 수 있다. 선거 후 여권의 기강이 해이되는 것으로 비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만 되뇌었다.
정당선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97년 국민회의 대통령후보 경선 때 당시 김대중(金大中)총재에게 유일하게 도전했던 인물. 이에 앞서 91년에는 ‘정치발전연구회’를 만들어 DJ의 ‘1인 독주’ 견제역을 자임하기도 했었다.
그는 “그때는 야당 때여서 그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여당이어서 사정이 다르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민주정당이라면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경선 참여를 결정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나의 경선 참여가 대통령께 도움이 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당선자는 대신 자신의 역할을 여야 협력과 지역감정 극복, 남북화해에 일조하는 데에서 찾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여소야대 정국 돌파를 위해 야당측과 만나 대화를 하는 데 무엇인가 기여하고 싶고 6월12∼14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 때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정부측과 협의 중”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대문 밖까지 나와 기자를 배웅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튼 앞으로 ‘선(先)지역구, 후(後)의정활동’ 원칙을 지켜나가겠다”고 거듭거듭 확인한 뒤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선 시간을 갖고 좀더 생각해 보겠다”는 정도로 ‘내일’을 얘기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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