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ile&Politics]'불신의 늪'서 건져낸 삶의 숨결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8시 36분


올해도 정치는 인기가 없었다. 여야는 싸우기만 했고 민생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정치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다. 의사당엔 증오와 욕설이 난무했다. 웃음이 있는 정치, 잔잔하게 가슴을 적셔주는 그런 감동의 정치는 우리에게 영원히 불가능한 것일까.

동아일보가 올해 정치면에 선을 보인 ‘S&P―웃음과 정치’는 이를 위한 작은 시도였다. 정치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우리에게도 웃음과 희망의 정치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길어 올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의 산물이었다.

6월19일자로 첫 ‘S&P’가 나간이래 불과 400자 미만의 이 ‘작은 소식’들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의원들이 휴식장소로 즐겨 찾는 국회 의원회관에 남자의원 전용 사우나는 있는데 왜 여성용은 없느냐는 여성의원들의 항의(8월7일자)는 남성 중심 한국정치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병오(金炳午)국회사무총장은 최근 “여성용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4선의 이협(李協·민주당)의원이 연탄을 때는 13평짜리 주공아파트에 18년째 산다는 얘기(6월29일자)나 민주당 서영훈(徐英勳)전 대표의 지갑에 달랑 2000원밖에 없었다는 일화(12월14일자)는 우리 정치와 정치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물론 후진적 정치에 대한 아쉬움도 빼놓을 수 없는 ‘S&P’소재였다. 대입학력고사와 사법고시에서 수석합격을 했던 원희룡(元喜龍·한나라당)의원이 고교생들로부터 ‘날치기 파동이 민주정치냐’는 질문을 받고 쩔쩔 맨 얘기(8월30일자)는 교훈적이었다.

김영삼(金泳三)정권의 실세였던 홍인길(洪仁吉)전 의원이 ‘8·15’특사로 감옥을 나왔지만, 추징금 때문에 아파트가 경매처분돼 ‘오갈 데 없는 깃털’ 신세가 됐다는 얘기(8월12일자)는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일깨웠다.

‘S&P’는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는 작은 변화들도 놓치지 않았다. 국회 문화관광위가 위원 18명 중 4명만 참석해도 예고된 시간에 개회, ‘코리안 타임’의 악습을 깬 얘기(7월22일자)나 국회가 상설화되면서 의원들이 식사시간을 아끼려고 예전엔 외면했던 의원식당을 자주 찾는 다는 얘기(7월24일자)가 그런 것들이었다.

정치스타일을 쏙 빼 닮은 취미생활도 화제가 됐다. ‘만년 2인자’로 불리는 김종필(金鍾泌)자민련 명예총재가 정치는 물론 골프에서도 수준급의 ‘세컨드 샷’을 자랑한다는 얘기(6월19일자)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무테안경이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는 주위의 건의에 고민하는 얘기(6월30일자)나 ‘부드러운 모습’의 사진을 찍기 위해 노타이 차림으로 사진관에서 3시간을 보냈다는 얘기(11월17일자) 등은 늘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미지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같은 당 박근혜(朴槿惠)부총재가 불편함을 무릅쓰고 육영수(陸英修)여사의 헤어스타일을 본뜬 ‘올림머리’를 고집(6월28일자)하는 것도 이런 이유로 ‘S&P’의 초점에 잡혔다. 백두산관광(9월22∼28일)에 나섰던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이 “평양도 보게 해달라”며 관광일정을 ‘보이콧’하고 침묵 시위를 해 북측을 끝내 ‘굴복’시킨 것은 ‘남한식 투쟁’이 북측에서도 통한 드문 사례였다(9월30일자).

<문철기자>fullmoon@donga.com

▼임상원/숨어있던 얘기통해 진실드러내▼

한국 신문들의 정치기사는 너무나 공식적(formal)인 기사들로만 채워져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의 겉모양만 딱딱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밖으로 노출된 것만이 진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공식적인 기사들만으로 진실을 모두 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정치는 특히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이면을 다루는 기사가 필요하다. 과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수준 낮은 정치 가십기사를 다루자는 게 아니다. 좋은 의미의 부드러운 기사들이 쓰여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가 6월부터 부정기적으로 게재해온 ‘S&P’는 좋은 시도다. 숨어 있는 얘기들을 끄집어내 진실을 드러내주는 기사쓰기는 평가받을 만하다.

‘S&P’가 앞으로도 수준 높은 기사로 그동안 ‘악(惡)’으로만 여겨져온 정치 이면 기사쓰기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바꿔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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