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뒷북치기’〓6일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총재는 ‘4·13’총선을 ‘3·15’부정선거에 비유하며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 이미 석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어서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신통치 않아 결국 국정조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총선 직후 한나라당 안팎에선 자민련과의 연대론이 부상했다. 그러나 이총재는 이를 외면하다가 민주당이 자민련과 함께 ‘비(非)한나라당 연대’를 구축한 뒤에야 JP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나마도 교섭단체 이면합의설 역풍을 맞았다.
서울의 L의원은 이와 관련, “총선 직후 전당대회 날짜를 잡아 부정선거 이슈 제기 시기를 놓친 것이나 JP가 어려울 때는 욕하고 편해지니까 만나자고 하는 등 이총재가 시기 선택을 잘못해 일을 그르친다”고 말했다.
▽합리와 힘의 이율배반〓6월초 16대 국회 개원 후 이총재는 국회의장 경선과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 및 신임 대법관 임명 동의에서 비한나라당 연대의 수적 우위를 인정했다. 이를 두고 이총재 측근들은 “총재가 토론 과정에는 우리 주장을 강조하더라도 표결 결과에는 승복하는 합리적 야당 상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총재는 교섭단체 요건을 완화하자는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 136명이 서명한 국회법 개정안은 아예 상정도 못하게 막았다. ‘총선 민의를 왜곡하는 행위여서’라는 게 이총재의 주장이었지만 종전의 다수결 원칙 준수방침과도 다른 처신이었다.
K의원은 “교섭단체 요건 완화에 반대해봐야 어차피 자민련의 실체는 엄존하는 것”이라며 “바둑으로 치면 이미 죽은 말을 살리려고 매달리는 동안 상대방은 벌써 중원을 확보한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아마추어리즘’〓이총재의 측근들은 그러나 이런 문제로 ‘이회창 정치’ 전체를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박한다. 이총재 나름대로 새정치를 추진하는 과정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한동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때도 이총재는 종전 야당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이총재는 청문회특위 위원들을 불러 인사청문회가 국정조사청문회와 다른 점을 조목조목 설명한 뒤 흠집 내기식 인신공격을 자제하라고 당부한 것.
‘의료대란’ 때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 해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것도 ‘이회창 정치’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 또 민생 현장을 방문할 때도 같은 곳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방문해 추진 상황을 확인하는 등 야당 총재로서 국정 운영에 참여하려 하는 것도 이총재가 중시하는 새정치의 한 면이라고 이총재측은 강조했다.
영남의 L의원은 “정치 경력이 5년에 불과한 이총재가 아직 여러 면에서 서툰 것은 사실이나 그보다는 장점이 많은 편”이라며 “미숙한 만큼 상대적으로 순수하고 새정치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속 좁은 與野 "먼저 사과하라" 신경전만…▼
국회 파행이후 여야가 보이고 있는 ‘속 좁은’ 정치 행태에 대한 비난이 높아가고 있다. 민주당은 27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유감표명 발언 이후 오히려 강경 분위기로 치달아 모처럼 조성될 뻔했던 화해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반면 한나라당은 ‘밀약설 파문’의 후유증으로 분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여야 협상창구마저 폐쇄해 버렸다.
김대통령의 유감표명 발언 직후 한나라당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정국 정상화의 돌파구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민주당 당직자들이 국회법개정안 상정 저지 등을 비난하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사과를 요구하는 강성발언을 잇따라 토해내면서 분위기는 원점으로 회귀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대화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정균환(鄭均桓)총무는 물론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 등 당 3역이 나서 28일 한나라당에 대화를 제의했지만 이총재 사과 요구로 더 틀어진 한나라당이 대화에 응할 리 없었다.
‘광폭정치’를 외쳤던 한나라당도 원칙적인 입장에서 한발 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강경파들의 목소리만 나오고 있다. 당내 협상론자인 정창화(鄭昌和)총무는 ‘밀약설 발언’으로 궁지에 몰려 다른 당직자들에게 수모를 당한 뒤 아예 이틀째 종적을 감춘 상태. 이 때문에 △민주당 사과 △국회법개정안 처리 무효화 △재발방지 약속 등 민주당에 대한 3가지 요구조건만 내세운 채 아예 협상창구마저 폐쇄했다.
당내에서는 “적절한 선에서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강경파들의 위세에 눌려 말을 못 꺼내고 있다.
<윤영찬·공종식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