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여권 '제3후보론' 왜 자꾸 거론되나

  • 입력 2001년 5월 6일 18시 57분


▼동교동계 계산은▼

민주당 내에서 ‘제3후보론’이 꿈틀대고 있다. 지금까지 당내 대선예비주자로 거론돼 온 김중권(金重權) 대표, 한화갑(韓和甲),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 노무현(盧武鉉) 상임고문 등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대선 후보로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엔 동교동계 인사들까지 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누가 제3후보냐’라는 핵심이 빠져 있어 아직까지는 ‘대들보 없는 가건물’에 불과하다. 제3후보론에선 현재 민주당이 처한 상황과 고민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제3후보론과 동교동계〓4·26 재 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 내에선 제3후보론과 함께 대선후보 조기가시화론이 등장했다.

김중권 대표가 제기했던 대선후보 조기가시화론 또한 ‘이대로는 안된다’는 민주당의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으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레임덕’과 직결돼 있어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제3후보론은 바로 김 대통령의 레임덕을 최대한 억지하면서, 특정 후보의 조기부상을 막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김 대통령의 친위세력이라 할 수 있는 동교동계가 부쩍 제3후보론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후견인 격이었던 권노갑(權魯甲)전 최고위원이 동교동계의 결속 강화를 위한 월례모임이 생기면서 이 최고위원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도 제3후보론의 부상과 무관치 않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또 동교동계 인사들이 거듭 ‘내년에 누가 대선후보가 되더라도 김 대통령이 결정하면 따른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동교동계 핵심인사들이 이미 대선후보 경선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지작업에 착수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계개편 겨냥하나▼

▽제3후보론과 한나라당〓여권 인사들의 제3후보론은 당장 ‘제3의 인물’을 찾고 있다기보다는 ‘아직 여권의 대선후보는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짙다.

따라서 제3후보론을 현 여권이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 새판짜기 움직임과 연관시켜 보는 시각이 많다.

즉 여권의 대선후보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제외한 야권의 대선예비주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3후보론은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의 내부 동요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3후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대선후보는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부총재에게 꽤 공을 들이고 있다는 설(說)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 부총재는 4월 중순 서울 청구동 자택으로 찾아가 JP를 만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의원이나,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에게도 제3후보론은 향후 거취에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이인제 견제카드인가▼

▽양자구도는 안된다〓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6일 “그동안 여권 내부적으로 각종 여론조사결과의 추이를 분석한 결과 이회창―이인제 대결구도가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선구도가 조기에 고착화되는 것은 여권의 입장에서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인제 최고위원측은 최근 두드러지게 강화되고 있는 동교동계의 견제 움직임이나정치권의 경계를 뛰어넘는 JP의 ‘저울질’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독자노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 최고위원의 측근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이 최고위원이 성급하게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얼마 전 여권의 한 핵심인사가 이 최고위원을 만나 “이회창 총재와의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고 충고한 것은 여권 핵심부의 움직임도 하나로 모아져 있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단 잠복했지만 정국의 향배에 따라서는 여권 내에 대선후보 조기가시화론이 얼마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만일 여권의 구심력이 더욱 약화되고 위기감이 커진다면, 김 대통령과 여권의 대선예비주자들간의 역학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제3후보론은 이처럼 △대선후보 조기가시화론의 재부상을 막고 △김 대통령의 레임덕을 최대한 억지하는 한편 △정계 개편을 자연스럽게 유발하기 위한 김 대통령 친위그룹의 다목적 포석이라는 게 여권 인사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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