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광고 사태가 독재 정권이 무지막지한 방법을 동원해 국민적 저항을 초래했다면 이번 세무조사는 매우 정교한 방법으로 진행돼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이 큰 차이점으로 분석된다.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는 공권력에 의존해 즉흥적으로 밀어붙인 70년대 광고 사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됐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광고사태는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당시 유신 독재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지 54일(1974년 12월16일) 만에 정부 압력으로 광고주들이 동아일보에 내던 광고를 무더기로 해약한 사건.
한달 만에 동아일보에 실리던 상품 광고의 98%가 떨어져 나갔고 당시 동아일보는 구독료만으로 신문사를 운영해야 하는 비상 상황에 직면했다.
동아일보 광고사태와 언론사 세무조사 비교 | ||||
동아일보 광고사태 | 언론사 세무조사 | |||
발단 |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정부 비판 강화. | 동아 조선 등이 지난해부터 ‘의약분업’ ‘대북(對北)정책’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자 김대중 대통령이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 | ||
전개 | 동아일보 비판논조 강화 50여일 만인 1974년 12월 중순 각 기관을 동원해 기업체에 동아일보에 내던 광고를 중단하라고 압력. | 올 1월 11일 김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 20일 만인 2월 1일 국세청장 언론사 세무조사 착수 발표. 1주일 만인 2월 8일 조사 착수. | ||
결과 | 정부의 광고 중단 요구 이후 한달 만에 동아일보 상품광고의 98% 이상이 떨어져 나감. | 132일간의 조사를 거쳐 단일업종으로는 사상 최대액인 5056억원을 추징. 동아 조선 중앙에 각각 800억원대의 추징 세액 통보. 사주 등 검찰 고발. |
1975년 1월25일자 동아일보는 “1974년 12월 중순경 모 기관의 지시에 따라 행정부의 관련 부처 당국자들이 각 기업체 책임자들을 불러 동아일보 및 동아방송에 광고를 내지 말도록 압력을 넣음으로써 시작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 역시 ‘옷로비사건’ ‘의약분업’ ‘대북(對北)정책’ 등에 대한 동아 조선 중앙의 비판적 보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월11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 시작됐다.
연두기자회견 20일 만인 2월1일 국세청은 언론사 23곳에 대해 정기법인세 조사를 실시한다고 서면 통보했고 1주일 후인 8일부터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132일의 조사 끝에 비판적 신문사에 밑동을 뒤흔들 만한 천문학적인 추징 세액이 통보됐다.
즉,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동아일보의 강도 높은 정부 비판(1974년 10월24일)→정부의 광고 중단 압력(1974년 12월 중순)→기업체의 광고 중단(1974년 12월16일∼1975년 5월13일)으로 이어지는 동아일보 광고사태의 구도와 유사하게 진행된 것.
서강대 최창섭(崔昌燮·언론학) 대학원장은 “이번 세무조사는 이미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권력 핵심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세무조사 사태는 70년대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를 참고해 전철을 밟지 않으면서 언론을 장악하려 한 점이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조용중(趙庸中) 석좌교수는 “김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국회 언론계 시민단체 학계가합심해서언론 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 이후 놀랍게도 그대로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김 대통령의 발언 이후 △민주당(국회) △한겨레 대한매일 KBS MBC(언론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시민단체) △신문개혁을 촉구하는 언론학자 100인(학계) 등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언급된 사회 각 분야가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듯 ‘언론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하지만 언론개혁에 대한 뚜렷한 정의가 형성되지 않은 채 이들만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데는 적잖은 부담이 따를 것”이라며 “줄곧 세무조사를 옹호하는 보도를 내보낸 MBC가 지난달 30일 이번 조치를 비판 언론 때리기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는 내용을 담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金寓龍) 교수는 “정부의 이른바 ‘언론개혁 프로젝트’가 부분적으로 정교할 수 있으나 방송사를 제외함으로써 정부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만들어 놓았다”며 “이번 사태가 수그러든 후 곧 정부는 방송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