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은 정부 출범 직후인 98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무회의가 요식행위로 끝나서는 안되며 밤새 토론을 해서라도 진지하게 국사를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세종로 중앙청사뿐만 아니라 과천청사에도 자주 나가 국무회의를 갖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해마다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갖는 일이 잦아지더니 올해에는 27회의 국무회의 중 21회(77.8%)가 청와대에서 열렸다.<그래프 참조>
청와대측은 “중요한 것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회의 내용이며 경호상의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으나 국무회의에 참석했거나 이를 지켜본 고위 관리들의 생각은 다르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리는 4일 “청와대와 정부 중앙청사의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청와대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곳이어서 아무래도 자유스러운 토론이 이뤄지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정부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갖는다는 것은 대통령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도 “출범 초기 국정현안을 놓고 국무위원들끼리 난상토론을 벌이던 모습이 사라지고 요즘은 대통령의 지적 사항이나 지시를 받아 적기에 바쁘다”고 전했다.
잦은 ‘청와대 국무회의’는 대통령의 여론 수렴과 민심 파악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대통령학) 교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일각에서 ‘세종로 중앙청사와 과천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마련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던 것은 ‘구중심처(九重深處)’인 청와대 만능의 국정운영이 가져올 폐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권 말기가 되면 업적 쌓기 또는 지키기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이 국무회의 같은 공식기구보다 대통령과 그 측근 중심으로 신속하게 이뤄지는 경향이 심화된다”고 덧붙였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한 인사도 “청와대에서 하는 회의나 행사는 대부분 다 짜놓은 각본에 따른 것이어서 대통령이 그것들을 통해서는 결코 참된 민심과 여론을 읽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