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사회주의적-포퓰리즘정책' 논란 전문가 진단

  • 입력 2001년 8월 2일 18시 36분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주요 개혁정책에 대해 한나라당이 ‘낡은 사회주의 정책’ 또는 ‘페론주의적 인기영합정책’이라고 공개 비난하고 나선 것을 계기로 여야간의 이념공방이 한창이다. 그러나 감정적이고 막연하며 비생산적인 논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편가르기와 혼란만 부추기고 있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정책전반▼

▽정책 총론〓연세대 최평길(崔平吉·행정학) 교수는 11일 “대통령도 구시대적 사회주의식이라는 소리를 들을 소지가 있는 정책은 삼가야 하고, 한나라당도 이런 공방에 매달리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실용주의 노선”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최영진(崔榮眞·정치외교학) 교수는 “정부의 개개 정책에 페론주의 경향이 일부 있기는 하다”며 “그러나 전체적으로 대중이 정부 정책을 찬성하고 있는 게 아닌데 대중추수주의라고 일괄해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진(朴進·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마침 오늘 사회정책학 교수들과 얘기를 했는데 현 정부의 정책을 사회주의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LG경제연구원 오정훈(吳貞勳) 책임연구원은 “야당은 정부의 노동 복지정책에 반대하면서 기업 위주 정책을 주장하는 것 같고, 여당은 근로자나 저소득층 위주 정책을 펴는 정도의 차이”라며 “이것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유럽의 보수당과 사회당 정도의 차이일 뿐 이념이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이정희(李政熙·정치학) 교수는 “지금 완전한 시장경제나 계획경제가 있겠느냐”며 “정부가 자유보다는 평등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펴는 데다 그마저 제대로 안되다 보니 논란이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규제·공적자금▼

▽기업규제와 공적자금 등〓이필상 교수는 “시장경제를 그대로 놔두면 독과점과 비리가 생기기 때문에 정상화시키기 위해 부채비율 등을 규제하는 것”이라며 “효율성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영진 교수는 “사회주의는 국영화를 의미하는데 지금 국영화 논란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서강대 유석진(柳錫津·정치외교학) 교수는 “공적자금 조성 등을 사회주의라 한다면 역대 정부는 모두 사회주의 정부”라며 “지금은 오히려 신자유주의로 가기 위해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 시장을 복원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노동정책▼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및 4대 연금〓한국금융연구원 김병덕(金秉德)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경우 정부가 보장하는 부분을 줄이고 시장기능에 맡겨 가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것은 사실이나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무리한 측면은 있으나 사회주의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오정환 연구원은 “어떤 정책이 형평성을 강조할 때,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사회주의적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나 4대 연금 같은 정책은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진 교수는 “건강보험 확대, 국민연금 확대가 사회주의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맞지만 학문적으로 쓸 때와 정치 사회적으로 쓸 때는 의미가 크게 다르다”며 “한국에서 사회주의는 ‘빨갱이’라는 의미로 전환된다는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L교수는 “기초생활보장제는 우리의 경제상황에 비해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고, 건강보험 통합은 형평주의를 너무 강조해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주 5일 근무제도 및 노사정위원회〓이정희 교수는 “노사정위를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하면 몰라도 사회주의는 지나친 표현”이라며 “주 5일 근무제도 역시 자본의 논리가 덜 반영된 채 노동계의 이해를 좇아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선전전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려대 이필상(李弼商·경영학) 교수는 “정부의 독단적 추진방식을 문제삼고자 한다면 국회를 통하거나 제도적으로 접근해야지, 이념 문제로 들고 나오는 것은 과잉 반응”이라고 말했다.

오정훈 연구원은 “주 5일 근무제도는 대중영합주의냐, 사회주의냐로 가르기보다 효율성의 문제를 따져보는 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승모·문 철·이철희·윤종구기자>fysmo@donga.com

▼포퓰리즘이란▼

‘대중주의’ ‘인기영합주의’ ‘대중추수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1890년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인민당(Populist Party)이 농민과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정책을 표방한 것이 연원이다. 일반적으로 대중동원과 이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정치체제의 운용을 지칭한다.

1943년 아르헨티나의 노동부장관이었던 후안 페론이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통해 노동자 계층의 전폭적 지지를 확보한 뒤 대통령에 올라 민중독재체제를 폈던 것이 상징적인 예이다. 세계 5위권의 경제대국이던 아르헨티나는 이 같은 대중영합적인 정책으로 인해 경제는 파탄에 빠지고 국가는 몰락했다. 선거에서 표를 의식, 경제논리에 반해 선심성 정책을 펴는 것도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경우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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