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 참배를 강행할 경우 일단 외교통상부 대변인 성명이나 당국자 논평을 통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명할 방침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처럼 ‘주일대사 소환→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유감 표명→범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란 초강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부 내에서는 “신사참배 문제가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 때문에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이는 교과서 문제와 다르다”며 “우리가 전 아시아의 ‘총대’를 메고 일본과 맞서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신사에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기 때문인데 그들 대부분이 중국 침략을 주도했던 장본인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한 중국의 대응을 지켜보며 보조를 맞춰 나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부가 신사참배로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일간 제반 현안 해결에 적지 않은 지장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당국자들은 “꼬인 한일관계는 결국 정상회담에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신사참배가 강행될 경우 한일 정상회담의 순조로운 성사와 생산적인 논의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일 두 정상은 △9월 연례 한일정상회담 △유엔총회 △10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11월 ‘아세안+3(한중일)’정상회의에서 각각 만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예년 같으면 정상회담 의제를 놓고 양국 외교부 실무자들이 활발히 협의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아직 어떤 얘기도 오가지 않고 있다.
일본으로선 신사참배 문제를 앞두고 먼저 정상회담 얘기를 꺼내기가 ‘미안한’ 상황이고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설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