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몇 사람의 일탈 행동과 햇볕정책이 같을 수는 없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성급한 기대와 통일에 대한 환상은 어떤 정권, 어떤 대북정책 아래서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문을 소수 극단주의자들의 튀는 행동으로만 치부해버릴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의 허점들, 그리고 그것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합의(컨센서스)의 부재 등이 이번 파문과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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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 독주식 대북정책〓전문가들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의 정서와 거리감이 있으며 그 틈새 속에서 이런 돌출행동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초기 과정에서 비밀접촉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일정 궤도에 오른 뒤에도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따라서 일부 급진세력들에겐 정부가 마치 든든한 ‘후원자’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원 차관은 “이번 평양행사가 파행으로 치달은 것은 정부가 그동안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일방적으로 서둘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햇볕정책과 급진세력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끊이지 않은 대북 저자세 시비도 이번 파문에 일조를 했다. 정부가 상호주의원칙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북측에 양보만 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분위기 속에서 북한 동조 발언은 스스럼없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동국대 고유환(高有煥·북한학과) 교수는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북간에는 일정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장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금강산관광사업 정상화에 남북협력기금 900억원을 지원했으나 북측으로부터는 아직 어떤 호응도 없다.
▽균형 잡힌 논의의 부재〓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홍구(李洪九)씨는 남북문제는 ‘상황의 이중성’이 있다고 항상 말해 왔다. 일면으로는 대화하고 다른 일면으로는 대결해야 하는 이중성이 있다는 것이다.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대화와 안보가 똑같이 중요함을 누누이 강조해 왔으나 국민이 체감하기로 저울추는 언제나 대화와 화해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햇볕정책이란 용어 자체가 그런 느낌과 인식을 갖게 했다.
그러다 보니 심한 경우 햇볕정책에 비판적이면 일단 ‘수구 반(反) 통일세력’으로 몰리는 풍토마저 생겼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민 모두가 대북 경계심을 과거처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화는 하되 긴장감을 늦추지 않아야 하는데 이게 흔들려버린 것.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친북단체나 명백한 좌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계심도 덩달아 느슨해졌다.
균형 잡힌 논의의 장(場)이라도 있었더라면 상황은 훨씬 나았을지 모른다. 햇볕정책에 반대한다고 다 수구(守舊)가 아니고, 반대로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다 진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는 노력을 더 했더라면 그런 돌출 언행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