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 총재는 이날 한동안 중단했던 ‘민생 투어’를 재개하는 등 정국의 중심을 비켜난 행보를 하루 종일 계속했다.
이 총재는 도시 저소득층 자활사업을 해온 서울 관악구 봉천동 ‘나눔의 집’을 찾아 공공근로사업 참가자와 일용직 근로자, 영세 자영업자 등 서민들의 하소연을 들은 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글대장경 완간 회향법회’에 참석했다. 그는 저녁에는 평화포럼 주최 국제회의 환영 리셉션에 참석해 “문제는 ‘포용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포용할 것이냐’다”며 상호주의와 투명성 및 검증 필요성 등 대북정책에 대한 평소 지론을 강조했다.
그는 정국 상황과 관련해서는 측근들에게 “충분히 정국 진행 상황을 살핀 뒤 신중히 대처하겠다”고 되풀이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내에서는 전반적으로 향후 정국운영 방향과 관련해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임장관 해임안 통과 직후의 대여(對與) 유화론이 힘을 잃어 가는 분위기다.
김기배(金杞培) 사무총장은 이날 당 3역회의에서 “대통령이 방송의 날 인터뷰와 7대 종단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남북간 화해 협력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트집 잡기’라는 식으로 말했다는데 이런 인식이라면 앞으로 정국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이런식이면 개각이나 당정 개편을해도소용없다”고경고했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당분간은 영수회담이나 국회법 개정안 문제에 대해 언급할 시기가 아니다”고 못박은 뒤 “김대통령은 ‘국민상대정치’라는 명분하에 정치권 외곽의 친DJ세력들을 동원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해 보려는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부총재중의 한 명은 “지금까지 여권으로부터 어떤 물밑 대화나 접촉 제의도 없었다”며 “해임안 표결 때 질 걸 뻔히 알면서도 DJ가 이를 강행한 것은 남북관계를 이용한 정계 개편 등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