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의 고위인사가 북측의 ‘요구’로 자리를 물러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고, 정부 대처방식의 문제점, 한적의 역할찾기 및 내부갈등 치유 등 숱한 ‘숙제’를 남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측이 장전총재의 언론인터뷰를 이유로 사퇴를 요구해온 것은 남북이 합의한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훼손한 것으로서, 북측이 남쪽의 인사권에 간섭한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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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적십자회는 지난달 3일 성명에서 “장총재가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있는 한 이산가족교환방문을 재검토하겠다”고 위협했고, 장재언(張在彦)북적중앙위원장은 2차이산가족 상봉행사중이던 이달 2일 서울에서 “장총재는 죄에 죽고 올바르게 재생해야 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측에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해 사태를 키우는 우(愚)를 범했다. 정부는 북측에 장총재 명의의 ‘유감서한’을 비공개로 전달하는 등 ‘뒷거래’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결국 북측 비난이 시작된 지난달 3일부터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는 한적 내분이 심각해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4차 장관급회담이 열린 이달 중순에야 북측에 대한 항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장전총재가 자신의 일본행을 권유했던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을 해임하고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벌어지는 등 한적은 극도의 내홍(內訌)상태에 빠졌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적의 역할을 정확히 재규정하는 등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도적 사업을 목적으로 한 한적이 정부 요청에 따라 계속 대북사업에 관여하고, 정권과 가까운 인사를 ‘낙하산식’으로 한적총재로 선출하는 관행이 계속되다 보면 비슷한 사태들이 재발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한적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등이 벌이는 대북사업의 ‘하부기관’의 모습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역할과 위상을 되찾아야 하며, 정부도 한적이 본연의 인도적 사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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