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문제가 없다고 해서 시행했다”면서 ‘허위보고’에 의해 정책결정을 했음을 자인한 뒤 여권 내에서는 근본적 대책마련과 함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민주당 K의원은 “정권교체 직후 당에서 분업 시행을 1년 연기한 것은 준비작업을 하라는 뜻이었다”며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하반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간이 됐으니까 시행하자’고 나서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사전준비 없이 의약분업을 밀어붙인 정부측에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행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차흥봉(車興奉)전 보건복지부장관은 99년 7월 ‘분업 실행위’를 출범시켜 11월부터 평균 30%에 이르는 약값 거품(마진)을 걷어내는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를 실시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했다. 문제는 그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점이다. 분업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의료계는 실거래가 상환제를 계기로 분업 영향을 피부로 느끼면서 시위와 휴진에 이어 지난해 6월 집단 폐업의 수순으로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8월 의약분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민주당 일각에서 유보론이 나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당시 모 중진의원이 일본식 임의분업을 건의했고,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여 이한동(李漢東)총리에게 재검토를 지시했으나 복지부와 당내 강경론자들이 집단 행동에 밀려서는 안된다며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당시 여권에 팽배해 있던 ‘공권력 강화론’도 대책없는 분업 강행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 여권 핵심에서 의료계 반발과 노조의 집단행동을 예로 들며 “공권력이 무력화돼서는 안된다”는 강경 분위기가 팽배했던 상황이었다.
어쨌든 근본적인 책임은 김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처럼 모든 문제에 ‘정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관료가 자기 책임 하에 정책을 고민하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많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분업 시행 이후는 몰라도 그 이전에 문제를 지적한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며 “공동책임이지 누구를 탓할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의약분업은 해야 할 당위성이 있고, 법도 하도록 돼 있는 데다 아래에서도 문제가 없다는데 대통령이 어떻게 안하겠느냐”며 ‘대통령 책임론’을 반박했다.
<김창혁·송상근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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