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여권 핵심부가 이 총리 유임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당장은 불안감 때문이고 길게는 내년 양대 선거 국면을 앞두고 구상해 온 나름대로의 정치 스케줄에 중대한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당장의 불안감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총리를 교체할 경우 국회 인준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에서 비롯한다.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 거부하지 않을 인물을 찾아내기도 어렵고 어렵사리 찾아낸다 하더라도 인준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출혈을 감수해야 할 형편임을 여권 인사들은 잘 알고 있다.
▼글 싣는 순서▼ |
- ① 정국 어디로 |
나아가 지금 총리를 교체할 경우 여권 핵심부의 연말 연초 선거관리내각 출범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불과 몇 달 뒤 다시 총리를 교체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이번에 총리를 교체한다면 새 내각은 자연스럽게 선거관리내각의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권으로선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대선후보 경선 국면까지 고려해 후임 총리 인선을 해야 하는데 내년 양대 선거까지 구상에 넣고 당정 구도를 전면적으로 다시 짜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이를 뿐만 아니라 여권 내부가 정비돼 있지 않다는 게 여권 핵심 인사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국 여권 핵심부가 이 총리의 유임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거기에다 머지않은 시기에 DJP 공조가 복원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반면 자민련으로서는 당 총재를 겸하고 있는 이 총리가 DJP 공조 와해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을 유지하는 것은 배신이자 탈당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여권과의 결별 과정에서 자민련이 내세웠던 ‘햇볕정책 속도 조절’ 명분도 이 총리가 총리직을 유지할 경우 크게 퇴색하게 된다.
반대로 내각을 총괄했던 이 총리의 사퇴는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해임안 찬성을 비롯해 공조 와해 과정에서 자민련이 취한 행동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자민련 관계자들은 생각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닌 당 총재가 ‘홀로서기 대열’에서 이탈할 경우 교섭단체 지위 상실로 위상 저하가 불가피한 자민련의 구심력을 현저히 약화시켜 소속 의원들의 이탈 분위기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자민련 관계자들이 우려하는 점이다.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이 총리의 총리직 유임을 단호히 거부한 것도 여권과의 대결 의도보다는 당을 지키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보전하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편 당내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이 총리로서는 공조 와해로 인해 수그러들긴 했지만 자민련 내에 잠재하고 있는 ‘JP 대망론’을 의식해 더욱 당 복귀를 주저할 가능성도 있다. 즉 돌아가 봤자 무력감만 느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윤영찬·이철희기자>yyc11@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