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관계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당신은 한국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었습니까.”
대표적 미국통인 서울의 A교수는 최근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다가 미국 내 지한파(知韓派) 친한파(親韓派) 지인으로부터 ‘핀잔’에 가까운 충고를 연일 들어야 했다.
A교수는 “한반도 전문가인 그들은 ‘한국 정부와 서울의 지식인조차도 반미감정을 즐기고 있는 것 아니냐. 한국 내 반미감정 과열이 촉발한 워싱턴 조야의 반한(反韓)감정을 달래는 데 힘이 부친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 안팎에서 ‘대미 자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반미감정을 ‘자연스러운 시대 변화의 반영’으로 규정하는 동안 미국의 대한(對韓) 인식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미국 지한파의 한미동맹 균열 우려=미 정부의 한 관리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밤거리를 걷다가 술 취한 행인으로부터 난데없이 머리를 얻어맞았다. 이 관리는 22일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다른 일행 2명이 그 사람을 말려 사태가 진정됐지만 ‘말로만 듣던 한국 내 반미감정이 이 정도구나’하는 불유쾌한 감정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는 “한미동맹이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의 외교정책이 당파적이고 분열돼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과 협상하는 한국의 실무진은 한국 내 반미정서를 의식해 일부러 강경한 태도로 우리(미국)와 협상에 임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아주 미세한 문제로도 의견 충돌이 자주 벌어져 ‘한미동맹이 이렇게 됐나’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미 행정부의 일부 인사는 “한국이 이라크나 이란 북한보다도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로 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미 현지 관계자는 전했다.
리처드 앨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더 중요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주한미군은 한국 내 반미시위대와 북한으로부터 동시에 위협 받고 있다”며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느끼는 ‘미국의 반한감정’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민주당 김종인(金鍾仁) 당선자는 “미국 내에서 ‘동맹인 한국에서 아랍의 알자지라 방송보다 더 반미적인 방송이 나온다. 한국이 이렇게 미국을 불신할 수 있느냐’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금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 의원은 “지난해 9월 방미했을 때 재미교포 대표자들이 ‘한국 내 반미시위가 미국 내 반한감정을 고취시켜 생업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더라”고 전했다.
▽한미동맹의 균열은 ‘햇볕정책의 그늘’?=한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 한미간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는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유산”이라며 “햇볕정책, 특히 대북 송금사건 이후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신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에겐 ‘위협적인 주적(主敵)’보다 ‘끌어안아야 할 민족’으로 성큼 다가왔지만, 2002년 9·11테러 이후 미국엔 ‘훨씬 더 위험한 국가’로 각인됐다.
지난해 4월 미국 폭스뉴스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가장 직접적인 위협 국가 1위(54%)로 북한이 꼽혔다. 반면 올해 1월 한국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리서치의 조사에선 ‘한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미국이 1위(39%), 북한이 2위(33%)로 나왔다.
미국민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확산’에 대한 두려움은 미국의 대북 정책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었고, 이는 한국에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 한미관계의 악순환을 초래했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한미동맹의 심각성은 햇볕정책에서 시작됐고, 그것을 계승한 현 정부로 이어졌다”며 “한국이 북한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얘기하면, 미국은 그것을 ‘이중적’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실속 챙기는 日-中, 한국은…▼
최근 한국의 대미관계는 상당히 악화된 것과 달리 일본 중국은 실리를 앞세운 대미외교로 실속을 챙기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지지했다. 심지어 ‘고이즈미 총리는 부시의 푸들’, ‘일본 외교는 미국의 자동인출기(ATM)’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이 가장 신뢰하는 동맹국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고 미국의 비호 아래 군사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미일 통상마찰이 심각했을 때 미국 내에서 일었던 이른바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 기류는 옛날이야기가 됐다.
미중 관계의 변화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소원했던 양국관계는 1999년 5월 미국 정보에 입각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으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성장과 국제사회에서의 지도력 발휘라는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꾸준히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2002년 10월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에 초대돼 각별한 환대를 받았다. 이에 앞서 장 주석은 96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별도로 만난 자리에서 ‘러브 미 텐더’를 부를 정도로 대미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대우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미국과의 신뢰를 구축하지 못해 한미관계는 몇 년째 교착상태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월가서 보는 한국▼
미국계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투자자들은 최근 한미관계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미국 월가의 동향에 정통한 다수의 국내 금융계 인사들은 21, 22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월가의 속내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 이들의 전언은 한국은 미국에 대해 두 가지를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선, 미국이 자국민의 투자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 시장을 보호할 것이란 믿음은 희망 섞인 착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증시에 투자한 금액은 600억달러가 넘고 일부라도 손실이 생긴다면 당사자에겐 뼈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컴퓨터 마우스 클릭 한두 번으로 하루 이틀사이에 빼내갈 수 있는 금액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모 종합투자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 세계 시장을 놓고 판단하는 월가의 최고결정권자에게 한국 투자분은 소수점 몇 자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 시장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시장규모는 대단치 않으며 한국이 안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철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의 착각은 미국의 근본적인 불신감은 안보문제에서 비롯됐다는 한국인들의 믿음이라는 것. 물론 미국은 북한 체제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따른 대규모 난민 유입 등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투자자들은 근본적으로는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진 한국 정부의 노사-경제정책에 의심스러운 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월가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민주노총을 방문해 ‘현재는 경제계가 (노동계보다) 힘이 세지만 (내 임기) 5년 동안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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