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참회록]⑨언론플레이/김황식 의원

  • 입력 2003년 8월 28일 18시 47분


서영수기자
서영수기자
“지금 이 순간조차 언론에 한번 ‘튀어 보기’ 위해 참회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지난해 8·8 재·보궐 선거에서 정계 입문에 성공한 한나라당 김황식(金晃植·경기 하남) 의원에게는 20개월짜리 ‘반쪽 의원’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늦깎이 의원’인 그의 대국민 인지도는 지역구를 벗어나면 거의 바닥 수준. 그래선지 김 의원은 28일 2시간여 동안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의 의정활동 기간 중 거의 매일같이 ‘홍보에 목을 매다시피’ 해왔다고 고백했다.

“다른 의원들과 달리 저는 임기가 20개월밖에 안 되잖아요. ‘김황식’이란 이름 석 자를 어떻게든 빨리 알려야만 했지요. 그래서 얼굴 알리고 이름 내기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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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언론을 타기 위해 때로는 ‘치사할’ 정도의 행동과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금배지를 단 뒤 지난해 8월 열린 첫 의원총회. 김 의원은 설레는 마음으로 남들보다 일찍 의총장에 나와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날 TV에는 유독 김 의원의 모습이 자주 나왔다.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김 의원을 알아보기 시작해 그의 마음은 뿌듯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TV카메라에 잘 잡히는 ‘명당’ 자리가 있더군요. 그날 내가 앉았던 앞자리가 바로 명당이었던 거지요. 사실 그 자리는 선수가 높은 중진들을 위해 양보하는 게 관행이었다고 합디다. 처음엔 몰랐죠. 그러나 알고 나서도 염치 불구하고 명당 자리에 앉곤 했습니다. 눈치가 보이든 말든….”

김 의원은 TV나 신문의 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할리우드 액션’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두 번째 의총이 열렸을 땝니다. 당시 김정길(金正吉) 법무부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을 놓고 관련 자료를 나눠주더군요. 나는 그저 궁금하고 잘 몰라 자료를 살펴보았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또 TV와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옵디다. 그 뒤부터는 회의가 열릴 때마다 무조건 열심히 자료를 살펴보는 척했죠.”

김 의원은 국무총리나 장관들을 국회로 불러 따질 때면 사안 여하를 떠나 무조건 큰소리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역시 나름대로 터득한 ‘언론타기’ 차원에서 그랬다고 김 의원은 말한다.

“지난해 첫 국정감사 때 당시 전윤철(田允喆) 경제부총리를 거세게 몰아붙였더니 다음날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더군요. 그 후 웬만하면 조용히 넘어갈 사안도 무조건 언성부터 높이고 봅니다.”

그러나 재선을 위해 얼굴 알리기에 시간을 바치던 김 의원에게 올 3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부인이 뜻밖에 암 선고를 받았던 것. 당시 의사는 “어차피 수술을 해야 하니 수술을 하면서 조직을 보자”며 수술을 먼저 권했다.

“앞이 캄캄했어요. 그런데도 병원에는 몇 번 가보지도 못했어요. 당시 내가 대정부 질문을 할 차례였거든요. 다행히 종양으로 밝혀졌지만 아내가 아픈 와중에도 언론에 이름 석 자를 내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이 정말 한심했습니다.”

김 의원은 가끔 자신이 연예인인지 의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한다. 언제 TV 카메라에 잡힐지 모르기 때문에 이른바 ‘화면발’을 잘 받기 위해 구입한 야한 넥타이만 30여개에 이를 정도.

“매일 아침 ‘최종 점검’을 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국정을 챙기는 의원의 참모습인지 스스로 회의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김 의원이 내뱉은 이 마지막 고백에는 ‘반쪽짜리 의원’의 자괴감과 반성이 배어났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김황식 의원은…▼

지난해 8·8 재·보선으로 정계에 입문한 초선 의원(53).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77년 증권감독원 검사담당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동양증권 법무부장, 경동대 겸임교수를 거쳐 섬유 사업체인 훼미리월드를 창업(92년)해 8년간 경영하기도 했다.

99년 한나라당 당기위원으로 정치권과 첫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8·8 재·보선 때는 ‘이론과 실물을 겸비한 경제전문가’를 내세워 민주당 문학진(文學振·전 대통령정무1비서관)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6대째 이 지역 토박이다. 6월 한나라당 대표경선 때는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를 도왔다. 현재 원내부총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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