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법재판소 무시 발상 옳지 않다

  • 입력 2004년 4월 19일 18시 48분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이 헌법재판소의 권능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경솔함을 넘어 위험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송 의원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헌재 재판관들이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의 진퇴를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헌재 재판관들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는 주장은 3권 분립의 기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온 것이다. 헌재에 탄핵심판의 권한을 부여한 헌법은 국민투표를 거쳐 마련됐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헌재 재판관 9명 중 3명은 국회가 선출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해야만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 탄핵소추권 및 심판권을 모두 의회에 주지 않고 의회의 탄핵소추를 헌재가 다시 심판하는 유럽식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헌재의 존재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권한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도그마가 사법권 독립이다” 운운한 발언도 법치주의의 근간을 부인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사법권을 사실상 정치권력의 예속 하에 두었던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많이 들어본 듯한 말이다. 송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가 재판하는 것도 정당성이 취약하다고 해야 하는가.

4·15총선 민의(民意)를 거론하면서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민 다수가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최근 여론은 헌재의 심판을 지켜본 뒤 승복해야 한다는 데에도 동의하고 있다. 총선 민의를 탄핵심판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헌재 재판관들이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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