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이 ‘북-미-중 3자회담’으로 시작되면 한국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동안 다자회담 논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입장을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만난 미국 정부 인사들은 형식에 상관없이 하루빨리 다자회담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사안에 따라 대북 경제협력 논의 때는 한국, 일본이 참여할 수 있고 에너지 지원문제는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내 생각은 다자회담은 하나의 절차로 봐야지 결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숫자로 시작하든 결국은 최소한 6자가 참여하게 될 것이다.”
―1993, 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외무장관으로서 정부 대책을 주도했는데 1차 북핵 위기와 이번의 북핵 문제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큰 차이점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93년에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이 미국과의 협상용인지, 아니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것인지가 핵심 의문이었다. 당시에 한미 양국은 북한의 목적이 어떤 것이든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협상을 진행시켜 북-미 제네바기본합의를 이끌어 냈다. 반면 지금은 북한이 조만간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과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긴박성이 증대됐다고 본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을 전후해 한미간 갈등설이 나오고 있는데….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에 이은 촛불시위 등으로 반미감정이 나타났고, 이에 대한 반발로 미국에서는 반한감정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양국간의 다양한 대화를 통해 오해가 많이 풀렸다고 본다. 시계추에 비유한다면 양쪽 끝까지 갔던 추가 이제 다시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주한미군 재배치를 비롯한 한미동맹 재조정 문제도 현안으로 등장했다.
“미군 재배치 문제는 미국의 동북아전략 변화에 따라 이미 오래전부터 검토돼 왔던 사안이다. 그런데 오비이락으로 반미감정 표출과 맞물려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오해와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부임하면 미국 정부 관리들과 긴밀히 협의해서 방위능력이 저하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시립대 교수와 스탠퍼드대 교환교수를 지낸 한 대사는 그동안 세계정치학회(IPSA) 부회장 겸 집행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학자 출신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고위관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과는 스탠퍼드대 교수 시절 가깝게 지냈고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등과는 프로젝트를 함께 한 적이 있어 대화가 잘 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사는 “미 행정부 안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한 강경론과 온건론이 엇갈리고 있다”면서 “행정부와 학계의 인맥을 활용해 북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득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차수기자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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