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권 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반(反)개혁’이라는 낙인(烙印)이다. ‘개혁’에 앞장섰던 인물도 한 번 ‘반개혁’으로 찍히면 기피인물이 된다.
2002년 대선 때 한화로부터 불법대선자금 10억원을 받아 당에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정(李在禎) 전 의원도 그 중 한사람이다. 성공회 사제 출신인 이 전 의원은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것은 물론 지난해 열린우리당 창당 때는 전국구 배지까지 버리고 신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대선자금 전달 혐의로 올해 1월 구속된 이후 그는 ‘정치무상(政治無常)’을 절감했다.
열린우리당 사람들의 냉담한 태도 때문. 이 전 의원에게 가장 먼저 영치금(5만원)을 넣어준 사람도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였다. 가깝게 지낸 것도 아니었던 김 원내대표의 성의에 이 전 의원이 오히려 깜짝 놀랐다. 김 원내대표는 “면회를 갔더니 마침 출정중이어서 영치금을 전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의 비서진은 재판 때 의원회관을 돌며 ‘힘 있는 의원’들의 참석을 부탁했지만 총무팀 실무자 2명만 달랑 참석했다. “뭘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창피하더라. 오죽하면 판사가 나를 을씨년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겠느냐”고 이 전 의원은 섭섭해 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수사 받다가 최근 무혐의 및 불기소 처분을 받은 천용택(千容宅)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당에서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털어놨다.
물론 아직도 끈끈한 정(情)으로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김태랑(金太郞) 전 의원은 “당은 달라도 옛날에 같이 고생했던 친군데…”라며 최근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됐던 민주당 김경재(金景梓) 전 의원의 석방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런 ‘의리파’들은 자꾸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이 전 의원은 다시 사제의 길로 복귀했다. 그가 “교회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제출한 사표도 반려됐다. 성공회 정철범 대주교는 “윤리적인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교회법은 나라법과 다르기 때문에 사제직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고 반려 사유를 밝혔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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