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저에 초청된 인사 가운데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의아해하곤 한다. 관저를 여러 차례 다녀간 여권의 한 인사는 최근 “대통령 내외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유리를 깼는데, 직원들이 모르고 방치한 건 아닐까”라고 재미있는 추론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벽시계에 유리가 없는 것은 경호상의 이유에서다. 밤중에 불이라도 나면 벽시계의 유리가 터지게 되고, 만에 하나 깨진 유리 조각에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를 당할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다.
이처럼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한 경호와 의전은 일반인이 전혀 짐작하기 어려운 구석까지 세심하게 배려한다.
21, 22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경호팀과 의전팀은 ‘격식 없는’ 회담을 뒷받침하느라 평소의 정상회담에 비해 몇 배 더 애를 먹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멋진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공동기자회견 장소를 호텔 안 정원으로 잡는 바람에 70여명의 경호요원이 관광객 또는 종업원으로 위장한 채 호텔 안팎에 배치됐다. 더욱이 수십개에 이르는 호텔 객실에서 창문만 열면 두 정상이 내다보이는 위치여서 경호요원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회견 장소 뒤편에 세워놓은 양국 국기가 제주도의 강한 바람에 넘어지는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큰 고민거리였다. 의전팀은 국기를 꽂아놓은 삼각받침대만으로는 불안해 8줄의 철사로 국기를 바닥에 고정시켜 ‘국기 전복’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또 두 정상은 서귀포 중문단지의 신라호텔에 함께 묵었고, 이 때문에 통상 분(分) 단위로 관리하는 모든 행사가 초(秒) 단위로 관리됐다. 정상회담 기자회견 만찬 산책 등 4번의 행사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도착해 있으면 늦어도 30초 이내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나타나도록 시나리오를 짜놓은 것.
두 정상은 겉으로는 환하게 웃었지만 뙤약볕 아래서 1시간 동안 선 채로 기자회견을 해야 했고, 10분 코스인 산책로를 빙빙 돌아 1시간 코스로 늘려 걷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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