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 칼럼]왜 큰 칼 빼들었는가

  • 입력 2004년 7월 7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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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구차스러운 해명이 있지만 이라크 테러조직 인질 김선일씨 피살사건에서 정부가 보여준 것은 정보력 부재와 대처능력 부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3000여명의 장병을 파병한다면서 현지 정보망이 교민들에게 귀동냥해야 할 정도로 허술하니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위험수위에 이른 국내 안보불감증이 해외에까지 뻗친 사례 아닌가. 부실한 정보망을 돈 타령과 인원 타령으로 돌린다면 아예 그만두는 것이 낫다.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큰 의미를 부여하는 파병이라면 당연히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 정말 이라크에 보낼 인원도 돈도 없단 말인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해 직무를 유기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편이 낫다. 이번 사건은 자주국방을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인적 물적 비용이 어떤 정도인지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큰 그림’ 못 본 외교부▼

애초 AP통신의 문의전화에 상황파악 능력의 허점을 드러낸 데 이어 통화 여부에 대한 신경전 끝에 ‘누구한테 물어봤는지 밝히라’는 것이 외교통상부의 대응이었다. 이러고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외부로부터 한국인 인질 여부에 대한 문의를 받는다면 외교부 직원 누구라도 지난번처럼 흘려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라크전쟁, 테러, 교민 납치에 대한 일련의 경각심이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라크전쟁의 ‘큰 그림’을 보려는 긴장감을 갖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초 허점을 드러낸 이유도 ‘큰 그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은 구성원들이 조직이 지향하는 목표와 현안의 큰 줄기를 인식하고 있을 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 경영의 제1장이다. 그래야만 돌발 상황에 대한 조직원의 자발적인 임기응변과 대처능력을 기대할 수 있다. 하물며 국정 최일선 조직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기업에서는 그 결과가 돈을 얼마나 버느냐로 귀결되겠지만 국가조직에서는 국민의 생명이 걸린 심각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위기관리 능력의 일단이 전화 한 통화에서 판가름 난 셈이다.

그렇다면 외교부 직원들은 왜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이 외교부가 현재 처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 한미관계를 필두로 크고 작은 외교안보 현안이 불거졌고 정책입안과 추진과정에서도 국가안전보장회의와의 갈등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동맹’이냐, ‘자주’냐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위에서 아래까지 휩쓸려 들었기 때문 아닌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런 분위기가 어디 외교부뿐인가.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를 놓고 논전을 벌인 재정경제부는 어떤가. 협력적 자주국방론에 이어 대북 적개심이냐, 애국심이냐로 곤혹스러운 국방부는 어떤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논란에 검찰의 입장은 또 어떤가. 이런 가운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빨치산과 간첩을 민주화운동 대상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들 부처가 겪는 갈등의 상대방은 모두 권력 직속기관이다. 나는 정책 혼선이 이들 기관의 ‘권력 코드’ 독주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본다. 대통령은 이런 국정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국정 갈등’ 수술해야▼

김선일씨 피살사건 뒤처리에서 지금 ‘큰 칼’이 번득인다.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특별감사에 착수했고 국회도 국정조사에 나섰다. 자칫 칼끝이 권력을 향할 수 있는 경우이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릴 수만도 없었을 것이다. 처절하게 울부짖다 숨져간 김씨 사건에 대한 국민적 울분을 방치할 경우, 정권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더욱이 잇단 악재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줄을 집권세력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앞으로다. 큰 칼을 휘두르며 들어갔으나 나올 때는 오히려 큰 칼이 문틀에 걸릴 수 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구조적 원인과 국정 갈등 분위기를 결연히 수술하지 않는다면 의혹만 증폭시킬 수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의 유일한 실수는 실종 문의 전화를 직접 받지 않은 것이라는 식이라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호박 자르자고 큰 칼 빼든 것은 아니잖은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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