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속상관 김익현대위 『金중위 다른사람 권총 휴대』

  • 입력 1998년 12월 11일 19시 30분


김훈(金勳·25·육사52기)중위의 직속상관이었던 김익현(金益賢·32·육사45기·당시 중대장) 대위는 11일 오전 국방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중위 사망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96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근무한 김대위는 미군 범죄수사대(CID)와 한국군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국회 국방위 소위원회에도 출석해 증언했다.

▼ 권총 ▼

김대위는 JSA에 들어가는 병력이 모두 권총을 차지만 주변 초소(GP) 근무 때는 소대장 부소대장과 이들의 운전병 등 4명만 권총을 소지한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 김중위는 자신의 권총이 고장나서 김모일병의 권총을 받아갔고 사망현장에서 발견된 김일병의 권총을 미8군 CID가 증거물로 가져갔다.

부소대장인 김영훈중사를 포함한 나머지 3명의 권총은 사건 직후 2소대 전체가 현장에서 4소대 병력으로 교체된 뒤 정상적으로 반납됐다고 김대위는 주장했다.

유족의 주장대로 타살이라면 권총을 휴대한 나머지 3명중 1명이 김중위의 총으로 김중위를 쏜 뒤 사건현장에 놔두고 본인 권총은 반납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현장사진을 보면 김중위 우측 가까이에 벽이 있고 총상은 머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났다. 총알이 들어간 사입구에서 나온 피는 얼굴을 일직선으로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괴거나 오른쪽 벽에 튄 상태다.

1,2차 조사를 벌인 미 CID와 한국군 헌병 및 육군 검찰부는 시체이동 흔적이 없고 옷차림이 단정하며 김중위와 오른쪽 벽 사이에서 다른 사람이 총을 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자살로 결론지은 것이다.

▼ 사망시간 ▼

김대위는 사건 당일 판문점에 견학온 1군단 관계자를 안내하고 함께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를 마신 뒤 식당에 가려는데 현장에서 사망 보고가 올라왔다고 말했다.

낮12시반경 때마침 미군 대대장이 들어와 사망사건을 보고하자 대대 전체에 비상을 발령했다는 것.

김중위의 유족은 전역병의 증언을 토대로 사망추정 시간은 오전10시35분∼11시이고 비상사이렌은 오전11시40분에 울렸다고 주장했다.

또 김대위는 미 CID가 통제선을 긋고 현장을 조사하는 상황에서 한국군 헌병이 나중에 도착해 같이 조사했다고 말했다.

사건현장인 지하벙커에 페인트칠을 하며 피를 지운 것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 상원의원들이 2월26일 판문점을 방문하는 일정 때문이었다고 김대위는 설명했다.

▼ 북한군 접촉 ▼

중대장 부임 직후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감시카메라로 보니 북한군이 계속 한국군 병사에게 휘파람을 불고 책 담배 등 선물을 던졌다고 김대위는 말했다.

김대위는 이를 북한군의 의도적인 심리전 행위라고 판단하고 북한군이 던진 물건을 주우면 반드시 보고하고 반납토록 교육시켰다는 것.

김대위에 따르면 근무의욕을 고취시키려고 보고와 반납이 제대로 될 경우 특별외박을 보냈지만 밤에는 줍지 말고 아침 순찰시 청소할 때만 수거토록 강조했다.

그러나 김대위는 김영훈중사가 군사분계선상에서 30여 차례나 북한군과 접촉하면서 안주를 곁들여 술을 마시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초소 근처까지 갔다 온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시인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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