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1호' 최종길교수 진실 밝혀질까

  • 입력 2001년 3월 8일 19시 02분


우리나라의 ‘의문사 1호’로 꼽히는 고 최종길(崔鍾吉) 서울대법대 교수의 정확한 사망원인이 28년 만에 밝혀질 수 있을까.

그 의문의 열쇠를 상당부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동생 종선(鍾善·56·미국거주)씨가 최근 귀국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비공개로 증언했고, 자신의 주장을 담은 저서 ‘산자여 말하라’(도서출판 공동선)도 곧 펴낼 예정이어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종선씨는 자신의 증언과 ‘산자여…’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제시하며 “이는 당시의 ‘자살’ 발표가 조작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도 이를 신빙성이 높은 주장이라고 보고 관련증언 및 자료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수는 73년 10월 16일 당시 중앙정보부에 자진출두해 이른바 ‘유럽거점 간첩단사건’에 대해 조사받던 중 “7층 화장실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됐으나 그 이후 ‘고문치사’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종선씨는 당시 중정 감찰실 직원으로 근무중이었다.

종선씨의 저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88년 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검찰 재조사가 이뤄졌을 때 안기부가 제시했던 몇 장의 ‘투신 현장 사진’.

그는 자신이 중정 내에서 장비감사를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시점의 중정은 흑백필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그럼에도 소위 투신 현장의 흑백사진을, 그것도 시체의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는 것만 제시한 것은 그 현장이 조작이었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촬영된 사진들이 공개될 경우 조작 여부를 분명히 입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73년 같은 사건으로 조사받았던 김장현(金長鉉·66)씨가 최근 “조사중 화장실에 갈 때는 반드시 ‘권총을 찬 경비원’이 1∼2m 뒤에서 따라다녔다”면서 “무장경비원 없이 수사관만 화장실까지 따라갔다는 당시 발표는 어불성설”이라고 밝힌 대목.

종선씨는 나아가 사건 직후 중정의 자체징계 대상에 담당수사관 2명 외에 경비원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화장실행’과 ‘그곳에서의 투신’이라는 사실 자체가 없었던 증거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최교수가 사망했다는 10월 19일 새벽 소위 투신 현장에 도착했던 이병정 중정 감찰과장이 88년 재조사 때 “이미 현장엔 시체도, 핏자국도 없었고 이를 물로 씻어낸 흔적도 없어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했던 증언 등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

종선씨는 당시 관계자와 관계기관들이 진상규명위에서 이 같은 사실과 정황들을 명확하게 밝히고 사진 등 관련자료까지 제출하고 공개 검증하는 것이 사실 규명의 핵심이라며 “그럴 경우 ‘자살 조작’의 입증에서 한걸음 나아가 ‘고문치사’ 사실까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종선씨는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를 위한 1인 시위를 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최교수 의문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공개하며, 14일에는 ‘산자여…’의 출판기념회를 연 뒤 출국할 예정이다.

<김창희기자>ins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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