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입수한 최 교수의 중정 조사 당시 자필진술서 등에 따르면 중정은 최 교수의 독일 유학시절부터 그를 상대로 공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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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의 자술서〓중정 출두 첫날 최 교수가 작성한 70여쪽 분량의 자술서에 따르면 최 교수는 독일 유학 중이던 62년 중정의 비밀공작원 황모씨(유학생)의 권유와 호기심 때문에 동베를린행 지하철에 함께 탔으나 동베를린의 프리드리히 슈트라세역에서 곧바로 돌아왔다.
최 교수는 서베를린대에서 열린 특별강좌에 함께 참석했던 황씨의 권유로 동베를린의 첫 지하철역까지 갔으나 겁이 나 역에서 바로 서베를린으로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당시 수사관들은 △황씨가 중정 공작원이었으며 △황씨와 최 교수가 동베를린에 갔다는 등의 사실을 62년에 이미 알았으며 최 교수의 자술 이후 이 문제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당시 최 교수에 대한 황씨의 동베를린행 권유는 유럽 유학생들의 동베를린 왕래를 포착한 중정의 역공작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황씨는 이와 관련해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중정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58년경 관광차 동베를린을 한차례 방문했지만 그때 최 교수와 함께 갔는지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중정 관계자 증언〓당시 중정 관계자는 “최 교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으나 그를 상대로 한 공작이 73년 당시 진행 중이었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최 교수의 동생으로 당시 중정 감찰실 직원이던 종선(鍾善·54)씨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형님 사건이 대강 수습된 뒤 동료로부터 ‘최 교수 출두를 앞두고 중정 안에 최 교수 상대의 공작여건이 성숙했다는 말이 돌았다’고 들었다”고 증언했다.
최 교수에 대한 조사과정도 간첩 수사를 맡아온 중정 5국(대공수사국)의 9과(수사과) 등이 아니라 공작과인 10과가 맡은 것으로 밝혀져 공작 시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기득기자>rati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