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金炯泰) 규명위원회 제1상임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최 교수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당시 중정 간부급 요원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한 결과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위원회에 따르면 이 간부급 요원은 “최 교수가 사망한 당일 수사에 관여하지 않은 한 수사관이 ‘당시 최 교수를 조사했던 수사관에게서 최 교수를 7층 외벽 비상계단에서 밀어버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나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그동안 최 교수의 타살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되긴 했지만 당시 중정 직원에 의해 타살 가능성에 관한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위원회는 이 간부급 요원의 신분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당시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최 교수 사건이 터졌을 때 내부 조사를 주도한 핵심 인물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간부급 요원에게 보고한 수사관은 이미 사망했으며 당시 최 교수를 비상계단에서 밀었다는 수사관은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최 교수가 비상계단에서 던져졌을 때 고문을 심하게 받아 가사 상태였는지, 아니면 이미 숨져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법의학자들에게 그 당시 최 교수 부검 자료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위원회는 당시 중정이 작성한현장검증조서,긴급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 등 5건의 서류가 허위로 작성됐음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이달 말 최 교수 의문사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최종보고서를 작성해 이르면 다음달 초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당시 중정은 “최 교수가 1973년 10월19일 오전 조사를 받던 중 간첩 혐의 사실을 자백한 뒤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남산 분실 7층 화장실 창문에서 뛰어 내려 자살했다”고 발표했었다.
최 교수의 타살 의혹은 최 교수가 북한 공작에 연루된 것이 아니라 중정의 공작에 휘말려 이에 저항하다 숨졌다고 본보가 잇따라 단독 보도(10월19일자 A31면·10월22일자 A30면)하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본보 단독보도 기사 다시보기▼ |
본보는 당시 최 교수의 시체 현장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 사진이 부검감정서 및 부검사진과 많은 차이가 있으며 이에 따라 중정이 최 교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투신 현장 자체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본보는 또 중정이 최 교수를 상대로 장기간 공작을 벌여온 사실을 최 교수의 자필 자술서 등을 토대로 보도했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연합통신 관련기사▼ |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