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은 엊그제 펴낸 99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의문사와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부분적인 성과가 없지 않았지만 양심수 석방 등 과거 인권 침해 피해의 구제, 반민주적 제도의 개선, 국가인권기구 설립 등 국민의 정부에 부과된 기본적인 인권 과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현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인권법 제정 등 새로운 인권제도를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본다. 인권법 제정과 이에 근거한 인권감시기구의 설립은 1998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선정한 김대중 정부의 100대 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3년째 표류하고 있음을 의식한 듯 이한동(李漢東)총리는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올해안에 인권법을 제정하고 인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인권법과 인권 기구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은 공약 이행이란 면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인권법의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해 15대 국회에 냈다 처리가 보류됐던 법무부의 인권법안을 거의 그대로 올 정기국회에 상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컨대 인권위원회를 민간기구로 만들어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시정권고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권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그동안 인권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왔듯이 인권위원회는 다른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 구제하고 인권에 관한 법과 제도를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위원회를 독립적 국가기구로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유엔 등 국제 인권단체는 실질적인 민주화를 앞당기는 제도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인권위원회 설치를 촉구해 왔다. 그 압력에 못 이겨 마지못해 허울뿐인 인권기구를 만드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정부는 국내 인권단체는 물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성실한 인권법안을 다시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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