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진실과 화해

  • 입력 2000년 10월 18일 18시 37분


독재정권 시대의 의문사들을 규명하기 위한 법정기구가 활동을 본격화한다니 또다시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좀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끈질긴 투쟁으로 국회에서 특별법이 겨우 통과돼서 가능하게 됐다. 유가협은 우리나라 민주화 단체 가운데 가장 비타협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것은 독재권력에 의해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에게서 나오는 강인한 저항의지였다.

▷유가협은 어머니들이 주도해왔다. 어머니의 논리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명료하다. 가슴에 묻은 자식의 행동규범이 무엇이었는지가 그 어머니의 세계관을 지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은 양심수가 재판받는 법정이나 대학생 시위현장에 찾아다니며 힘을 보탰다. 언제나 핍박받는 소수 약자들 편에 서서 고난을 함께했다. 시퍼런 권위주의 정권아래서 민주화투쟁을 한 그들의 자식과 동생이 비록 소수이고 약자였지만 역사적으로 옳았다는 신념 때문이리라.

▷오랜 군부통치로 의문사와 실종자가 많이 나온 나라가 아르헨티나였다. 1983년 선거에서 대통령이 된 라울 알폰신은 30여년간의 군부정권이 자행한 학정을 단죄하려 했으나 증거를 찾기가 역부족이었다. 조사실무를 맡아주어야 할 정보수사기관들이 사실상 그 조사대상이기도 해서 반작용이 많았다. 거기서도 ‘5월광장 어머니들’이란 단체의 끈질긴 추적으로 상당수의 학살진상이 입증됐다. 아르헨티나판 유가협의 어머니들이 발휘한 힘이었다.

▷의문사 규명위의 활동에 공안기관들이 제대로 협력할지,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속으로 거부감을 갖지는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시 유가협의 어머니들 같은 민주화 인권단체들이 대거 나서 힘을 모아야 할지도 모른다. 1994년 남아공 대통령에 취임한 넬슨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흑인차별정책에 저항하다 희생된 민권투사들의 사인규명 등 수만건을 조사하고 그중 2만1300여건의 청문회를 열었다고 한다. 우리도 단죄보다는 진실규명과 화합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 화합을 위해서도 먼저 진상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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