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한민국. 집권세력을 중심으로 ‘과거사 진상 규명’ 목소리가 높다. 대상은 현대사는 물론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심지어 10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해도, 더 이상 ‘웃기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을 정도다.
진상 규명에 집착하는 세력이 강조하는 방향을 보면 대체로 우리 과거는 ‘오욕(汚辱)의 역사’다. 심지어 단절돼야 할 역사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처럼 ‘부정’으로 일관하다 보니 ‘그늘’도 뚜렷하다. 특히 광복 이후 비록 굴곡이 있었지만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통해 한국사에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정체성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을 책임진 여권이 미래에 대한 비전보다는 과거지향적으로 흐르고 ‘정략적 역사 과잉’에 매몰되면서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회 전체의 ‘갈등지수’와 분열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백범 김구(金九) 선생의 비서를 지낸 김우전(金祐銓·82) 광복회장도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불행하게도 진보와 보수라는 새로운 남남(南南)의 갈등으로 국민을 편 갈라놓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스럽다”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님께서도 상생(相生)의 큰 정치를 해 달라”고 고언하기도 했다.
본보가 12일부터 14일까지 연재한 8·15 광복 특별기획 ‘한국, 이젠 미래를 말하자’ 시리즈 취재에 도움을 준 각계 전문가들은 이렇게 강조했다. “중국 싱가포르 등 우리의 경쟁국들은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다. 한국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세계무대에서 처질 수 있다.”
지도층의 분열로 국권을 상실했던 100년 전 우리 역사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교훈을 보여 준다. 집권 세력이 미래전략 수립에 힘을 쏟지 않고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나중에 그들이야말로 ‘청산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공종식 경제부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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