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철수/‘과거 청산’ 대상 문제있다

  • 입력 2004년 8월 16일 19시 09분


노무현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다시 과거사 청산을 촉구했다. 근대 100년의 한국사는 ‘왜곡된 역사’ ‘질곡의 역사’ ‘굴절의 역사’로 자리매김 됐고 친일과 항일, 좌와 우, 독재와 민주세력간의 대결의 시대로 낙인찍혔다.

일제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는 8·15 경축식이니 친일과 항일을 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새겨야 할 것은 국권을 찬탈해 간 일본에 대한 단죄다.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임기 중에 한일 과거사를 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친일자와 항일자를 가려내는 데 일본의 침략사를 외면하고도 규명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6·25 부역 행위자에 대한 연좌제로 국론이 분열되고 피해자가 많았는데 다시 친일파와 친미파에 대해 연좌제를 적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친공산세력도 단죄해야▼

물론 과거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작업이 아니라 학계의 작업이어야 한다. 좌우 대립을 들어 대한민국의 건국사를 왜곡하는 것은 헌법 전문이 선언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무시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던 좌익 빨치산 세력이 광복 후 북한에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6·25 남침을 한 주역이라는 것은 문헌이 증명하고 있다. 광복 후 59년간의 과거사를 정리하려면 북한 정권이 저지른 만행과 인권 탄압의 죄상도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북한은 자주적이고 통일지향적이라고 보는 친북세력 친공산세력도 단죄하여야 한다.

친일파 자손이 부자가 되고 항일한 사람들의 후손이 빈곤한 것은 국가 책임이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있건만 독립유공자는 9000명밖에 인정되지 않고 있다. 40년간의 독립투사 수가 광주민주화운동 때의 유공자 5000명의 배도 안 된다는 사실은 공식 기록의 불비 때문이다. 그나마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사람 중에는 친일파로 다시 판명된 경우도 있다. 과거사의 조명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독립유공자를 대량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그 후손들에게 실질적인 취업 알선과 생계 보장을 해 주어야 한다.

일제에 의해 토지와 재산을 수탈당한 자, 강제노동을 한 자에 대한 재산 보상도 해 주어야 한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개인청구권을 대신 갚는다는 조건으로 3억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정부는 대부분의 개인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 주지 않았다. 이 청구권도 시효가 지난 것이기는 하나 지금이라도 법률을 만들어 적정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일본에 대한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한일기본조약을 개정하는 것이나 노 대통령의 일본 총리에 대한 약속으로 개정 요구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노 대통령이 정부기관이 행한 인권탄압 행위와 의문사를 조사해 공개하도록 지시한 것은 만시지탄이 있다. 이미 국가정보원이 자체의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군 검찰 경찰 등도 뒤따를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기 때문에 행정 각부에 지시하여 철저히 조사케 하여야 하며 국가배상을 해 주어야 한다. 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제도를 없애고 배상액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에 준하도록 해야 한다.

▼일제피해자 보상 신경을▼

3선 개헌 이후로 한정한 민주화보상 대상자도 5·16 때까지 소급해야 한다. 또 인명 피해나 신체상이(傷痍)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재산 강탈 등 재산적 피해도 보상해 주어야 한다.

정부는 과거사 청산이 가져다 줄 이득과 그것이 정쟁으로 번져 경제 회생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가능성을 함께 판단해 현명한 정책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과거사 청산이 미래 한국의 발전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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