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류지태/‘과거청산’ 이렇게 풀자

  • 입력 2004년 8월 20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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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역사논쟁이 뜨겁다. 밖으로는 중국과 고구려사 문제로, 일본과는 독도 문제로 역사논쟁이 일어나더니, 안으로 과거역사 정리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열린사회는 모든 논의에 대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하기에 과거사 정리 문제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시민들간의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친일 진상 규명도 제대로 안되고 출범한 우리의 지난 역사에 비추어 과거사 청산은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만시지탄은 있지만 국가발전을 위한 중요한 선행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목적’ 오해살 일 없어야▼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사 정리 작업은 우선 그 논의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 정리의 목적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기록하여 국가적 가치관을 제대로 세우고, 후세에 교훈을 남기고자 함에 있을 것이다. 친일 행위로 기회주의적 처신을 한 사람들이 아직도 대우받는 사회는 미래가 없으며,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도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청산이 지금 와서 누구를 처벌하고 단죄하자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역사적 평가에는 시효가 적용될 수 없지만, 연좌제적 효과를 사회 전반에 요구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일이다. 역사 바로잡기가 새로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새로운 갈등요인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친일행위자의 인위적 대상 구분 등 ‘정치적 목적’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요소는 경계해야 한다. 친일행위의 진상규명은 그 행위의 비난 가능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정직급 이상의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획일적 대상 구분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며, 면서기 출신이라 하더라도 민족정기에 유해한 행위를 한 자는 모두 그 대상이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거사 청산작업의 ‘주체’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된다. 최근 일련의 사태처럼 친일청산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할 것이다. 역사를 바로 세워 사회의 구심점을 만들겠다는 목적이 행여 몇몇 사람의 가족사로 인해 훼손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그러하기에 과거 청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중립적이고 도덕성이 강한 사람들이 논의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만큼이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시각도 다양하다. 정리 대상인 과거사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부터 논란이 되는 실정이다. 친일청산 논쟁과 친북용공 문제, 유신독재의 공과(功過) 논란 등이 혼재돼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뒤섞이게 되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 어렵다. 현대사의 이러한 어두운 면들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기에 일괄해 처리하기보다 단계적으로 하나씩 문제를 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적과제 우선순위도 고려를▼

과거사 청산보다 더 중요한 국가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국가적 과제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진지한 반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을 ‘과거 덮어두기’쯤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시각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획일적인 사고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정치권은 과거사 문제에만 지나치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차분하고 신속하게 매듭짓고 다른 현안의 해결에 힘을 모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국가가 할 일과 시민사회가 할 일을 현명하게 구분한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기왕 국가가 방향을 제시했으니 그 정리 작업은 객관적 인사들로 구성된 시민사회가 맡도록 하는 것도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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