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의장은 인터뷰에서 “당의 100대 입법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가보안법 폐지다. 형법으로도 충분한 만큼 개정이 아니라 폐지하겠다”며 국보법 폐지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신 의장은 또 “올 정기국회 내에 모든 개혁입법 처리를 완수하고 100대 입법과제를 모두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에 설치키로 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과 관련해 “친일진상규명은 국가기관의 불법 행위 또는 인권침해 행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국가기관의 과거사 규명과 친일진상 규명은 각기 다른 기구에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해 과거사진상규명 작업에서 친일문제를 분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신 의장은 16일 부산에서 가진 확대간부회의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안한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국회 설치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자민련에 공식 제안했다.
▼개혁입법과 경제 대책▼
―정치권이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지금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경제에는 사이클이 있는 것이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바란다고 해서 잘되는 것은 아니다. 우물가에 가서 숭늉 달라고 할 순 없다. 국민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나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들 하는데,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때처럼 국가위기는 아니다. 희망적이다.”
―경제난의 원인을 뭐라고 보나.
“경제는 어렵지 않을 때가 없다. 그러나 희망적 요소도 있고 비관적 요소도 있다. 요즈음 응달의 부분은 경제가 겪어야 할 (진통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국민소득과 임금도 올랐고 과거식으로 통제하던 시대도 아니다. 기대는 커지는데 현실은 한계가 있어서 어려움을 더욱 피부로 느끼는 것 같다.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조류에 맞춰 첨단산업도 중공업도 잘 가고 있고 국제경쟁력도 갖춰 가고 있다. 수출도 250억달러 흑자다. 용틀임하기 직전이다.”
―한나라당은 정부 여당이 과거청산을 앞세워 분열을 꾀한다고 지적한다.
“논쟁 없는 정치가 정치냐. 정치란 누가 옳으냐, 정통성이 있느냐를 국민 앞에서 겨루는 것이다. 경제안정 도모한다고 정치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수긍할 수 없다. 특히 역사 바로 세우기는 꼭 해야 한다. 지금까지 어두운 시절에 득세한 사람이 주류를 이루고 국회 다수를 차지해 이 문제가 묻혀 왔다.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는데, 안 하면 직무유기다. 그것 하겠다고 해서 정권 잡은 것 아니냐.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개혁이냐’고 하는 것은 개혁을 싫어하는 쪽에서 하는 말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소신에 변함없나.
“그렇다. 개정도 없다. 생각은 확고하다. 국보법 없어도 절대 안전하다. 단순명쾌하게 해야지. 북한과 전쟁 위험에 시달리는 나라도 아니고 독재정권 하의 상황도 아니다. 북한과 상대적으로 하나하나 주고받는 시대는 지났다.”
―100대 개혁과제 완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국회의원 151명이 100대 과제를 못해서 되겠느냐. 길게 끌 이유가 없다. 힘이 있을 때 의지가 굳을 때 해야 한다. 내년으로 넘어가면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올해가 절호의 기회다.”
―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발언에 대해, 민생문제를 제쳐 놓고 왜 이 시점에 과거사 청산이 화두냐 하는 지적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걸고 다수당이 됐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한다. 독재정권이 저지른 불법 행위를 자기들이 결자해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전엔 힘없어 못했지만 이젠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개혁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발전의 방법론이다. 문어발식 경영과 투명성 강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은 이미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다. 그때는 끽 소리 못하더니 이제 와서 왜 난리냐.”
―과거사특위는 어떻게 설치할 것인가.
“화해와 미래를 향한 것이라는 본질을 망각해선 안 된다. 누구를 처벌하겠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사특위는 정치인들로 구성돼서는 정치논쟁이 되기 쉽다.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처럼 사회지도층으로 구성해서 국회의장 직속으로 하든지 해야 한다.”
―친일진상규명법도 통합 처리할 것인가.
“통합할 경우 핀트가 흐려지고, 본질도 다르다. 국가기관의 불법 행위 또는 인권침해 행위를 조명하자는 것인데, 친일문제는 식민지 하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치현안 및 黨운영▼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동의안이 연말에 제출된다면 그때의 상황과 여론을 고려해서 결정하면 된다. 자기 나라 군대를 전쟁터에 보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외교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라크 상황이 가변적이고 미국 대선도 있으니 미리 말할 필요는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만날 생각은 없나.
“무조건 만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박 대표가 전직 대통령들을 만나고 다니더라. 과거의 공과가 뚜렷한 사람도 만나는데 왜 여야 대표끼리는 못 만나겠느냐. 노 대통령과도 만나도록 건의할 생각이 있다.”
―과거사 문제가 만남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은 없나.
“과거사가 못 만날 이유가 되나. 치열하게 싸울 건 싸우고 겨누어야 한다. 흐리멍덩하게 앉아서 이래도 저래도 좋다고 하면 경쟁이 없다. 싸우되 방법만은 페어플레이 하자는 것이다. 박 대표가 그 정도도 소화 못하나. 어차피 그런 핸디캡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
―기간당원 자격완화 문제로 당이 시끄럽다. 당권파와 개혁당 출신간의 세력 대결로 보기도 한다.
“‘엘리트 당원’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대중 당원’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다 일리가 있다. 다만 지구당도 없고 당원 모집이 쉽지 않은 만큼 당원을 폭넓게 보유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치생명을 걸고 새정치 하는 나에게 당권파란 말이 합당한가.”
―노 대통령과 자주 연락하나. 대통령이 당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정기적이진 않지만 가끔 본다. 과거 정부처럼 업무보고 하러 대표와 사무총장 등이 매주 청와대에 들어가던 시대와는 다르다. 내가 대통령과 소원해 만나주지도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떠벌리는 성격이 아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만난다.”
―내년 2월 전당대회 때 당권에 도전하나.
“당 정비가 중요한 임무다.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개혁과 민생 중 어디가 우선인가.
“개혁과 실용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념적인 진보-보수의 구별은 구태의연한 구분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우린 이념적으로 중도이고, 실행 방법은 개혁이다. 민주노동당이 생기는 바람에 우리가 중도정당이라는 게 확연해졌다.”
―당 의장으로서 앞으로 역할은….
“개혁과제는 천정배 원내대표에게 맡기고 나는 당을 건설하고 완성시키는 일,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
정리=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辛의장 인터뷰 이모저모▼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은 인터뷰 내내 화끈하고 딱 부러진 태도로 ‘쾌도난마 화법’을 구사했다. 민감한 문제일수록 말을 돌리고 즉답을 회피하는 대부분 정치지도자의 스타일과는 확실히 대비됐다.
가장 시원스럽게 답한 대목은 국가보안법 폐지 소신에 대한 것이었다. 신 의장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우리나라는 국보법이 없어도 절대 안전하다. 개정도 없다. 생각은 확고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당내에는 단계적으로 하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세상에는 명쾌하게 해야 할 일도 있다”며 “올해 정기국회 회기 내에 폐지하겠다”고 못 박았다.
과거사진상규명과 개혁추진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경제를 핑계로 그런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거 얘기를 하고 싶지 않거나 개혁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층”이라고 단정했다. 이어 “우리가 그것(개혁과 과거청산) 하겠다고 표를 달라고 해서 다수당이 됐는데 안 하면 되겠느냐”고 개혁 당위론을 폈다. 이어 그는 “(개혁과 과거청산을) 하고 나서 선거에서 심판받으면 될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지난달 초 미국 방문시의 경험을 소개하면서도 그는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그는 “거기 가서 구질구질하게 말을 꼬면 그쪽에서 ‘왜 왔느냐’고 생각할 것 아니냐. 안 가면 몰라도 가는 이상 ‘한미동맹만 얘기하겠다’고 결심했다”며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린 한미동맹이 제일 중요한 외교 원칙이다. 너희도 우리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딱 잘라 얘기했더니 표정이 풀리면서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신 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노무현 대통령이 나더러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충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카메라 비춘다고 억지웃음 웃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건 신기남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직설적 스타일을 거듭 강조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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