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이 의장은 30일 청와대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할 예정이라고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부대변인이 29일 밝혔다. 김 부대변인은 “이 의장이 의장직을 맡은 데 대해 의례적인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측에 협조를 구하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과거사 및 경제▼
―경제상황에 대해 어떤 인식과 해법을 갖고 있나.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 경제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노사정 대타협만큼 투자조건을 좋게 만드는 요인이 없다. 이게 잘 되면 개혁에 대한 저항도 없어질 것이다. 다만 경제살리기가 우선이라고 해서 경제살리기에 한눈이 팔려 개혁을 안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과거사에만 매달려 있다는 일부 평가는 나의 전력, 그리고 취임 직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정면 공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기싸움 차원이었다.”
―노사정 대타협과 관련한 로드맵이 있나.
“정치권이 노사정 대화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노사 문제가 타결되면 기업이 투자를 못 하겠다고 할 구실이 많이 사라진다. 정부가 나서지 못하고 끙끙대는 것을 우리가 매를 맞고 노동계가 지지를 철회하는 한이 있어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게 어디 있나. 법인세 몇 % 올리고 내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당이 이를 위해 노력할 테니 정부는 감세, 고유가 문제에 성의를 표하라고 얘기하겠다. 전반적인 경제 기조는 재정확대지만, 고유가와 관련된 기업에 대해서는 감세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기업 쪽에서는 경제정책과 과거사 매달리기 등이 불안해서 투자하기 겁난다는 목소리가 많다.
“과거사 문제로 투자를 못 한다면 그 사람들더러 정치하러 나오라고 해야지. 그건 정치하는 사람이나 역사하는 분에게 맡겨놓고, 기업은 노사정 타협 등에 노력하면 된다. 자꾸 딴 얘기를 갖고 투자 안 한다고 하지 말고….”
―과거사 문제가 국가적 어젠다의 최우선과제로 비치기 때문에 문제다.
“과거사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 및 정당성과 관계돼 있다. 독재한 것은 남북 양쪽이 다 비슷하고, 결국 문제는 일제 잔재의 청산이다. 남북한간에 정당성과 정체성 경쟁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이런 점에서는 그들(북한)에게 빚지고 있는 듯한 측면도 있다. 많이 배우고 지위 높은 사람일수록 나라와 국민에 제대로 한 것이 있느냐. 그 유산이 한 번도 정리되지 않았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자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물려주자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가 넬슨 만델라를 찾아가 ‘역사적으로 당신에게 사죄한다’고 하고, 400년간 지속된 인종차별정책을 끝낸 뒤 만델라 밑에서 부통령을 했다. 우리에게 그런 정치가 있었느냐.”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
“북한이 좌파를 다 거세하고 김일성 일파로만 지배층을 형성한 것과, 남한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그를 둘러싼 친일파를 제외하고 우파를 거세한 것은 둘 다 문제다. 김구 송진우 여운형 등이 모두 암살되고, 그런 것이 건국과정의 정당성을 빼앗은 것 아니냐. 치명적인 것은 군 경찰 정부 주요 기구에 독립운동가를 배제하고 친일파로 채운 것이다. 이런 것이 민족 허무주의를 낳고 가치관을 파탄시켰다. 과거 청산과 관련해 동아일보도 1975년 3월 기자 등 136명이 대량 해직된 동아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해결 자세를 보이는 게 도덕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이제는 매듭을 풀어야 한다.”
―지난달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일 진상규명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했다가 최근 입장을 바꾸어 공세를 취했는데….
“의장 취임 직후 박 전 대통령의 과거를 거론한 것은 박근혜 대표가 ‘친북 용공행위도 조사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그런 말 안 했으면 나도 안 그랬다. 일본군 장교, 공산주의자, 군 내 프락치 총책 등의 이력을 가진 부친을 두고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 장준하 선생 기념사업회장으로서 그 분이 돌아가신 것에 대한 부채감도 있다.”
▼개혁 및 정치 현안▼
―국가보안법 처리는 어떻게 할 건가.
“나는 국보법으로 4번이나 구속됐다. 국보법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국보법 때문에 나라 안전이 지켜진다고 생각하는 상당수 국민을 충분히 고려해서 법 개폐에 임해야 한다. 국보법에 존치해야 할 부분을 형법에 반영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또 민주헌정에 대해 쿠데타를 선동하는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도 논의해야 한다.”
―당이 추진하는 100대 개혁과제의 로드맵이 있나.
“100대 과제에도 우선순위가 있을 것이다. 정기국회에서 몽땅 다 하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만난 적이 있나.
“7월 만나 노사정 대타협 문제를 주로 얘기했다. 이게 안 되면 개혁도 안 된다고 했고 대통령도 경청했다. 아무튼 나는 김원기 정동영 신기남 세 분에 이어 네 번째 릴리프 투수다. 내년 2월의 전당대회를 잘 치러내고 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잘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다.”
―한나라당 시절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데 대한 당내 비판이 적지 않다.
“나름대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내가 주창했던 신(新)주체론, 즉 수구냉전과 독재, 지역주의 청산이 열린우리당을 통해 실현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과거 일로 시비한다면 대꾸하지 않겠다.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냐.”
정리=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균형외교론’ 수차례 강조▼
이부영 의장은 대외 관계에 있어서 ‘균형감각’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미국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 일본의 패권의식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였고, 외교 안보 분야에서는 합리적 냉철함이 필요하다는 강조이기도 했다.
이 의장은 먼저 중국에 대해 “후진타오 주석은 지방 당서기를 하면서 소수민족에 대해 강경책을 쓴 사람”이라며 “중화중심 시각이 투영될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타나는 게 우려스럽다”고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거론했다. 다음달 초 방문을 앞두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부담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말을 아끼진 않았다.
미국에 대해서는 양면성을 강조했다. 이 의장은 “미국이 용산기지 이전 협상 등에서 옛날처럼 압도하면서 끌고 가려 하지 않는다는 걸 감지할 수 있다”며 “미국의 영향력은 상대화돼가고 있다. 우리의 유일한 동맹이 미국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다만 미국의 역할이 있기에 중국이 우리를 대접한다고 본다. 미국의 역할이 없어지는 때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미리 헤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이나 일본의 적극적인 패권의식 발동을 보면서 미국에 대해서도 균형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연말에 제출될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 처리 문제와 미국의 대북인권법 저지를 위한 일부 의원의 서명움직임에 대해서는 “한미동맹과 남북교류협력이 양립 가능하게 된 것은 추가 파병으로 인한 외교적 성과다. 과거사 진상규명이나 노사정 대타협도 안보를 기초로 해서 가능한 것”이라며 “이를 근거로 의원들을 강하게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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