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연행묵인 굳어져

  • 입력 2002년 5월 15일 18시 34분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이 중국 경찰의 북한 주민 연행을 묵인했을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아나미 고레시게(阿南惟茂·사진) 주중대사가 “탈북자들이 관내로 들어오면 쫓아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으며, 탈북자들이 망명의사를 담은 영문 편지를 부영사에게 보여줬으나 이를 묵살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미 대사는 사건 발생 4시간 전인 8일 오전 정례 간부회의에서 “신원불명자를 관내로 들여보낼 필요가 없다. 망명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망명자라고 할 수 없다. 쫓아내는 것이 좋다.인도적 문제가 일어나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사건 발생 직후 선양 총영사관의 부영사가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처리 지침’을 받았기 때문에 아나미 대사의 이 같은 지시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일본 언론은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교도통신은 아나미 대사가 96년 주중 공사로 있을 때도 한 북한 과학자의 망명 신청과 관련해 ‘난민이나 망명신청자가 들어오면 대사관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아나미 대사는 2차대전 패전 직후 ‘한 몸 죽음으로 대죄를 받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가족 앞에서 할복 자살한 아나미 고레치카(阿南惟幾) 당시 육군대신의 6남”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아나미 대사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의 발언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부인했다. 그는 정례 간부회의에서 “탈북자는 중국으로 불법 입국한 사람이 많으나 일단 관내로 들어온 이상 인도적 견지에서 이 사람들을 보호하고 제3국으로 이동케 하는 등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상한 자가 대사관 부지에 허가도 없이 침입하는 경우에는 침입을 저지하고 규칙대로 대사관 문 밖에서 사정을 청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 외무성은 탈북자들이 망명의사를 담은 편지를 경비부영사(경찰 출신)에게 보여줬다는 사실을 은폐했다. 외무성은 중국측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뒤늦게 “부영사가 영어를 몰라 탈북자에게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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