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길수네 친척 北送 막아야

  • 입력 2002년 5월 9일 18시 32분


중국 경찰이 총영사관 문턱에 쓰러진 채 매달려 있는 엄마를 끌어낸다. 어느 샌가 엄마 등에서 떨어진 두 살배기 아기는 우두커니 그런 엄마를 바라본다. 머리 양쪽을 묶은 앙증맞은 아기의 뒷모습이 보는 이의 코끝을 찡하게 한다.

어제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은 중국 땅에서 생사를 건 모험을 감행하는 탈북자들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탈북자들에게 문 안쪽은 자유로 향하는 길이지만 문 바깥쪽은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의 모험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이런 비극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엊그제 중국 선양(瀋陽)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하려다 실패한 장길수군 친척 5명은 당연히 한국으로 와야 한다. 최소한 그들의 의사에 반해 북송(北送)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5명 중 2명은 진입에 성공했으나 나머지 3명은 총영사관 문턱을 넘지도 못했다고 해서 처리에 차등을 둬선 안될 일이다.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 총영사관 진입에 성공한 탈북자 3명에 대한 처우와 달라져서도 안될 것이다. 도대체 문을 넘고 못 넘고 여부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번에 중국 경찰은 일본 총영사관 안으로 들어가 탈북자 두 명을 끌어내 중일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일본 측은 무단 진입에 항의하고 연행해간 탈북자의 신병 인도를 중국 측에 요구했다고 하나 사건 발생시의 석연찮은 정황이 상대적으로 명쾌한 일처리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일본 측 직원이 중국 경찰과 정문에서 대화를 나누고 뒤이어 중국 경찰이 총영사관에 들어가 탈북자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탈북자 문제가 이제 한중일 등 동북아국가 공통의 고민 사항이 됐으며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 할 국제문제가 됐음을 말해준다. 우리 정부가 ‘조용한 외교’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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