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한국 안 갈래요˝

  • 입력 2002년 5월 13일 18시 37분


최근 중국 선양(瀋陽)의 미국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3명과 일본총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중국 경찰에 강제 연행된 장길수군의 친척 5명이 모두 미국 망명을 원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는 탈북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이 어떤 모습인지를 되씹어보게 한다.

자유와 식량을 찾아,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그들은 왜 같은 겨레가 살고 있는 한국을 외면하고 탈북자에게 정치적 망명을 허용한 전례가 없는 미국에 가겠다고 한 것일까.

일본 언론은 13일 이들을 도운 비정부기구(NGO)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들이 ‘한국에는 좌익세력이 있어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데다 미국에 가면 북한에서의 체험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미국 망명을 희망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12일 이들 탈북자가 한국에 가면 북한 간첩에 의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고 한국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기를 원치 않고 있어 이들이 북한 실상을 전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점을 미국 망명 요구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5월 멕시코를 통해 미국에 밀입국하려다 체포된 뒤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 김순희씨는 중국 옌볜(延邊)지역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에 대한 불신과 ‘한국에는 절대 가지 말라’는 조선족들의 부정적인 이야기 때문에 험난한 미국행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극히 일부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한국도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 탈북자들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의 생각이 전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이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인민군 포로로 잡혀 있다 풀려난 주인공 이명준이 한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닌 중립국행을 택해야만 했던 분단의 비애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아프게 와 닿는다.

한기흥〓워싱턴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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